하루를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을 때, 평화로우면 문제가 있는 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엄청 의미 있는 뜻은 아니고 단순히 내가 있는 환경에서는 평화가 찾아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공허함이 찾아온 것처럼 일도, 마음도 비어있다고 느껴진다. 상황이 안정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위기라고 말할 수 있고, 지쳤냐고 묻는다면 썩 그런 상태는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떨까?
우울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인생 노잼 시기가 찾아온 것도 아니다. 마치 이 세상에서 나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지낼 뿐이다. 성장이나 뭔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멈췄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단순히 나는 지금 멈춰있다. 모든 번뇌를 벗은 것처럼 그저 아무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무념무상의 마음상태가 분명 나쁜 게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있어도 쉽게 지나갔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럽다. 마치 나만 무언가 이루고 있지 않다는 은근한 불안이 싹트는 셈이다.
누군가 그랬다. '바쁠 때는 쉬고 싶고, 쉴 때는 불안하다'. 그리고 이 말의 대답으로는 '자연스러움'이라고 했다. 감정이 과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배고프면 먹고 싶고, 배부르면 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보통의 치열한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크게 보면 지금 당장 큰일이라고 생각해도 지구가 멸망하면 별거 아닌 일이 될 것이다. 중국의 고서인 채근담(菜根譚)에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바람이 자면 나뭇잎도 멈춘다’ 하는 말이 있다. 그저 지금의 내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비어버린 마음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게 익숙지 않다. 뭐라도 하고 싶지만 또 막상 뭘 할 게 없다. 일에 대해서도, 생활에 대해서도 무언가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딱히 매너리즘은 아니지만 나서서 일을 벌이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까.
석가는 깨달음을 얻어 초인이 되었다. 사람도 무언가 깨달음을 얻으면 온갖 세상만사 근심걱정이 들지 않는 신선급으로 진화를 한다. 그래서 번뇌를 벗고, 불안을 덜고 평화와 안정을 추구한다. 이래도 허허허 저래도 허허허 하는 사람이 된다면 만인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 거듭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앞날이 없는 것처럼 안정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이렇게 살면 재미가 있나 싶다. 역시 입체적으로 사는 게 나에게 맞는 것 같다.
여전히 마음이 비어버린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이게 얼마나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딱 하나 알겠는 것은, 이 시기를 나는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나쁜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조금의 에너지를 바라는데 다 써버린 건전지를 새것인 줄 알고 교체당한 기분이다. 결국 이것도 내 인생이니 조금만 더 힘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