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아, 그럴 수도 있겠다. 누구나 처음은 있고, 마냥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실수해가면서 성장하는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생각을 한다. '완벽하지 않으면 엄마가 되지마'.
비혼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고, 아빠는 뭐하고 엄마만 탓하냐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도 아니다. 만약 '처음'인 상황이 여행이었거나, 조직을 이끄는 리더였거나 한다면 원래의 생각을 고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과 한 사람을 사람답게 양육해야 하는 것은 아예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부모는 자신을 만들어낸 신이자, 따라야하는 모범이자, 향후 살아남아야 하는 100여 년을 이끌어줄 가이드다. 그런 부모가 단순히 '처음'이라는 이유로 실수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집안은 엄격과 방치의 중간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통금을 어기면 크게 혼났다. 폭력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인신공격 급으로 말을 듣기도 했다. 게다가 부모의 싸움은 내가 6살 때부터 쭉 이어져왔으니, 자식의 정서는 상당히 불안했다. 그렇게 한 명의 자식은 겉으로 방황했고, 한 명의 자식은 안으로 숨어들었다. 이 영향은 지금도 어떠한 트라우마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지금. 환갑을 넘은 부모와 서른을 넘은 자식 둘이 되어 무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부모는 항상 자신이 잘 키웠다며, 양육 프로그램을 보면 우린 잘 컸다며 말한다. 어쩌다 본가로 돌아가면 엄청 친한 것처럼 나를 안는다. 뭐라도 하나 더 해주기 위해 힘을 쓴다. 그러다 말다툼이 시작되면 다시 어린 나를 다루듯 돌아간다.
부모는 부모가 처음이지만 자식은 부모가 처음이자 끝이다. 100살을 산다고 해도, 내 부모는 하나 뿐이다. 그러니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부모는 알아야 한다. 살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강제적으로 세상에 꺼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니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을 책임질 자신이 없고,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보다 좌절하게 하는 상황을 더 많이 만들 것 같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채 그저 내 기분대로, 감정대로 생명을 만든다는 것은 범죄나 마찬가지다.
부모가 되어본 적은 없다보니 편협한 의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굉장히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특히 아빠는 자녀가 어렸을 때 대부분 신경을 안쓴다. 양육을 엄마에게 모두 맡기기 때문이다. 가끔 주말, 휴일에 나가 놀거나 그정도. 자녀와 애착관계가 형성될리 없다. 그런 아빠는 자녀가 어느정도 컸을 때 친구같은 부모자식관계를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자녀는 이미 아빠를 '돈 벌어오는 사람', '어색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이제와 친한척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아빠와의 관계가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일반인과 다를바 없다. 본가에 돌아가도 아빠는 없는 사람 취급하며 서로의 생일조차 챙기지 않는다. 이미 어렸을 적 트라우마로 인해 성인이 된 시점에서도 아빠라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 잘 하세요가 아니다. 낳을 거라면, 키울 거라면 충분한 준비와 책임감을 가지고 하라는 것이다. 무작정 출산률이 낮으니 낙태도 안되고 덮어놓고 낳자는 이상한 사상에 빠져버린 이 사회에 순응하지 말고, 본인이 생각했을 때, 내가 내 평생에 있어 한 생명을 어른으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이 된다면 그때 시작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