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한순간에 모험을 떠날 수 있다면

by 서이


인형이나 장난감 따위는 사주지 않았지만 책은 만화로 된 것이라도 사주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또래보다 큰 책장을 가지고 있었고, 60여 권이 넘는 문학전집, 30여 권의 삼국지, 그리고 내가 고른 책들이 정렬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어린아이가 그렇듯, 나 또한 책 읽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특히 문학전집에는 처음 읽는 외국 소설들이 많아서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단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중 가장 재미있게 읽고, 읽다, 닳아버린 책이 몇 권 있는데 '15 소년 표류기'와 '로빈슨 크루소'. 두 책이었다. 다른 책들은 의무적으로 한 번씩만 읽어봤다면 이 두 책은 아직도 내용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두 책의 내용은 동일하다. 열다섯 명의 소년들이 어른 없는 무인도에서 살아남은 것과 어른이 무인도에 표류하다 구출된 이야기. 어떻게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동굴을 파고, 물개로 기름을 얻고 할까라는 존경심으로 읽은 것은 아니고, 그냥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자체가 나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조금 더 어렸을 때는 항상 일요일 오전에 방영하던 '체험 삶의 현장'과 '도전! 지구탐험대'를 빠짐없이 보고는 했다. 더 커서는 지도와 나침반만 들고 목적지를 찾아다니는 오리엔테어링 대회를 곧잘 나갔다. 모험과 탐험의 이야기가 가득한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은 진작 보고 있었고, 흔히 '밥친구'라고 불리는 킬링타임용 방송으로는 EBS의 '극한직업'을 자주 보고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무인도에 가서 혼자 살고 싶다, 휴가철에 오지에 가서 텐트 하나치고 지내다 오고 싶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


취향이 한결같은 것인지. 확고한 것인지. 우리 집안은 외향인만 셋이다. 유일하게 나만 내향형에 사람만 보면 기운이 빠지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런 사람이 그저 오지에서 '생존'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단지 이 사회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그동안 생각했는데, 또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상상력이 풍부하다 보니 읽는 책, 만화, 영화 등 다양한 컨텐츠에 나를 대입하는 것이 취미다. 그러니 나는 이미 무인도에 표류해 열심히 불을 피우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 현실에서는 가스불 켜는 것도 귀찮아 쉬는 날이면 누워만 있는 사람이, 오지에 떨어지니 부지런해졌다. 사회에 부적응해 낙원을 떠올리는 사람인가,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모험을 떠나고 싶은 돈키호테인가 헷갈린다.


우리는 삶 자체가 도전이고 모험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살아간다'라고 불러지기 때문이다. 모든 결과는 오롯이 내 결정에서 나타나다 보니 선택 하나하나가 모험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이 쌓여 인생이 되고, 경험이 되어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단순하게도 성숙한 사람이 될 바에 정해진 답을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저 '생존' 하나의 기로에 서있는 삶을 살고 싶나 보다.


어렸을 적에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 모든 행동에 책임을 지고, 내가 돈을 벌어 내가 살아남아야 하는 게 두렵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누구나 환상은 있어, 꿈꾸는 어른으로 클 줄 알았지만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행인 1에 비할게 못 되는 어른이 되었다. 남은 인생 또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이 가득한데, 일일이 하나씩 선택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게 버겁다.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 같다. 단 한 번이라도 발을 잘 못 디딛는 순간, 나는 그렇게 무저갱으로 빠져드니까.


그래서 인생에, 내 진로에 정답이 있으면 한다. 아무리 인생은 개척하는 거라지만 선택 앞에 작아지는 나를 보기가 힘들다. 특히 최근엔 이제 공기업에서조차 받아주지 않을 신입직원의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함부로 이직을 생각할 수 없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 그것을 쫓아 모험을 떠나기엔 가진 게 없다. 가진 게 없어서 오히려 도전하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 바보다. 배수의 진을 친 것이나 마찬가지. 모 아니면 도, 성공 아니면 실패가 확실하고 인생에서의 실패는 곧 죽음과 가까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난 가진 게 없어 도전이 무섭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그저 태어났으니, 즐기다 가고 싶은 마음이나 녹록지 않다. 하루를 온전하게 나를 위해 보내는 것이 나에겐 모험이다. 그 모험을 떠날 수 있는 현실을 만날 기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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