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어디 있나 싶더니, 방 안에 있었다

by 서이

언제부턴가 집이 아닌 곳에서는 에너지가 빨리 닳았다. 이십 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혼자 집에 있는 것도 물론 즐거웠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놀고, 이야기하는 게 더 좋았다. 배터리로 표현하자면 집에 있을 땐 시간당 1% 정도 닳고, 누군가 외부에서 만나고 돌아오면 20% 정도 닳았다. 하지만 서른이 된 지금은 장을 보러 근처 마트에만 다녀와도 -30%, 누군가 만나 해 질 녘에 들어오면 방전되기 일보직전이다.


내향형 인간이기도 하지만 온전한 내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운 요즘이다. 사람을 만나든 아니든 밖에 나가 걷고, 어딘가 방문하고,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닳게 한다. 이 정도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다. 그렇다고 집에 있으면 힘이 나는 건 아니다. 정말로 온전하게 내 집, 내 방에 혼자 있으면서 해야 할 일이 없고, 다음날 일정이 없어야지만 비로소 힘이 난다. 만약 화장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린 다음에 널어야 되는 상황이라면 이 역시도 에너지가 닳는다.


나이가 들수록 집에만 있고 싶은 욕구가 커진다.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고 어떠한 행위도 하고 싶지 않은 채 그저 죽은 듯 누워서 잠만 자고 싶다. 그래서 주말엔 보통 16시간 정도 잠을 자는 편인데 이유를 생각해 보니 잠을 자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아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나오는 기제가 아닐까 싶다. 생각을 안 하고 싶어 생각하지 않는 걸 생각하는 사람이다 보니 깨어있는 자체로 에너지가 닳는가 보다.


이런 나에겐 하나의 고민이 있다.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이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사전적 정의에서의 행복은 1. 사람이 생활 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 2. 사람의 운수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기거나 풍족한 삶을 누리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한자로 보면 幸福. 다행 행, 복 복이라는 한자를 쓴다. 다행인 게 복이라는 걸까?


나는 살면서 운이 따라준 적이 별로 없다. 복권도 천 원 이상 당첨되어 본 적이 없고, 대학도 내 앞 번호가 문을 닫고 들어가 하향지원했다. 가고 싶은 직장은 단 한 번도 붙은 적 없으며 돈을 벌긴커녕 가지고 있는 돈도 까먹는 신세다. 굳이 따지자면 '운도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러다 보니 행복의 사전적 정의의 두 번째는 내게 해당되지 않는다. 좋은 일이 많이, 풍족한 삶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생활 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몰입되어야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인데 행동하는 모든 것에 에너지가 닳는 나로서는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다. 다만 딱 하나. 온전히 나 혼자 침대에 모로 돌아누워 바디필로우를 다리 사이에 껴놓고 배터리 가득의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을 때 평안하다. 기쁘고, 즐거운 상태는 아니지만 충분히 만족을 느끼는 상태라고 생각을 한다. 그 상황에서 무엇인가 즐거운 일이 생기면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라는 걸 깨달았다. 행복이 어디 있나 싶더니, 방 안에 있었다.


사실 이전까지는 살아남는데 급급한 나머지 행복은 고사하고 가늘고 길게 또는 죽은 듯 살고 싶은 정도였다. 인생에 어떠한 큰 목표도 없고, 꿈을 좇자니 결국 돈이 전부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젠가는 모두 죽으니 대충 살다 가야겠다'. 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니 별로 행복하고 싶지 않았고, 무언가 소중히 하며 아끼지도 않았다. 돈을 벌면 쓰고, 일이 없으면 쉬고, 그러면서 신세한탄을 했다. 잘난 사람을 질투하진 않았지만 부러워하긴 했다. 난 왜 이렇게 태어나서 세상을 힘들게 살아남아야 할까, 울기도 했다.


시간이 지났고, 살림이 여유로워진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온전히 내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나만의 시간이 중요해지고, 외부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집, 그중에서도 방 안 침대가 나의 셸터가 됐다. 그곳에서 혼자 있노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행복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장소와 시간이 생겼다. 그제야 내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았다.


누구는 나이 먹고 궁색 맞게 집 안에만 있냐고 말한다. 나와서 연애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무언가 활동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내 행복은 방 안에 있으니 굳이 밖에서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 누군가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고 말했다. 굳이 나의 불행을 떠들고, 위로받으며 슬픈 마음을 주변인과의 만남으로 털어낼 필요가 없다. 평생 혼자 지낼 거냐라고 들어도 안될 것 없다. 젊은이가 그러니 출산율이 어쩌고를 들어도 알 바 아니다. 내 행복은 방구석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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