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용기와 인장응력
by 엔너드 EngNerd
#압력용기 #인장응력 #가스라이터 #점화 #칸막이 #칸 #공학 #기술
이 글은 유튜버 '사물궁이 잡학지식'에게 제공한 원고를 다듬어 작성한 것입니다.
(가스라이터 용기 가운데에는 왜 칸막이가 있는 걸까? 편)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서 결제를 할 때 계산대 앞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유심히 보신 적 있나요? 사탕, 껌, 젤리, 초콜릿 등 과자류가 놓여있죠. 무심코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초콜릿을 하나 집어서 충동구매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자가 아닌데 알록달록한 막대같은 것들이 잘 정렬되어 있기도 합니다. 바로 흡연자들에게는 익숙한 일회용 가스라이터 말이죠.
가스라이터는 발화성 물질인 액체 상태의 부탄(Butane)을 담고 있어서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데, 가스라이터 용기 내부를 유심히 보면 가운데 칸막이가 있어서 두 칸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기는데, 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빨대에 부탄이 잘 빨려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왜 굳이 칸막이를 둔걸까요? 일부 주장처럼 밑넓이을 줄임으로써 부탄 수위를 높여 빨대가 잠기게 하려고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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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스라이터의 점화 원리에 대해 살펴볼게요. 가스라이터로 불을 피우려면 산소가 공급되는 환경에서 가스라이터 내 부탄이 기화된 후 불씨(spark)와 접촉하여 발화점 이상의 온도가 되어야 합니다.
- 발화점: 공기 중에서 물질을 가열할 때 스스로 발화하여 연소를 시작하는 온도 (환경 조건에 따라 값이 달라서 절대적인 값을 얻을 수 없음)
- 인화점: 어떤 물질이 불붙을 수 있는 최저온도
불씨는 점화 휠(spark wheel)을 이용해 페로세룸(ferrocerium)이라는 금속 부싯돌을 긁거나 압전소자(piezoelectric effect element)를 눌러서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불씨를 만들 때 밸브와 연결된 버튼을 눌러서 밸브를 열면 용기 안에 있던 고압의 액체 부탄이 빨대를 통해 노즐(nozzle)로 방출됨과 동시에 가스로 기화됩니다. 방출된 부탄가스는 불씨와 만나 발화점 이상의 온도가 되면 연소하여 불꽃을 일으킵니다.
가스라이터에서 연료로 쓰이는 부탄은 끓는점이 약 -1 ºC 이기 때문에 상온에서는 기체 상태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기체 상태로는 휴대용으로 사용할 만큼 많은 양을 저장할 수 없습니다. 대신 부탄 가스에 높은 압력을 가하여 액체 상태로 만든다면 작은 용기에 많은 양을 보관할 수 있게 되죠. 부탄의 증기압(vapor pressure)은 20 ºC에서 약 2.2기압이기 때문에 2.2기압 이상의 압력을 받는 부탄은 액체 상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즉, 가스라이터는 용기 내에 2.2기압 이상의 액체 부탄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높은 압력의 액체 또는 기체를 보관하는 용기를 압력용기라 합니다. 압력용기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소화기, 음료수 캔, 스프레이 캔, 압축공기 탱크 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콜라 캔은 내부 압력이 2.5~3.5기압 정도 됩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원통 모양이라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용기가 높은 압력을 견디기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단면이 원 모양일 때 가장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스라이터는 단면이 원이 아니라 둥근 사각형이죠. 이때 용기는 어떻게 힘을 받을까요?
위의 그림과 같이 내부 압력이 높은 용기의 단면(파란 영역)을 생각해볼게요. 용기 일부(노란 선 영역)의 단위면적당 힘 평형을 고려해보면 용기 내부와 외부 압력이 있고, 고체가 이를 저항하는 응력(stress)이 있습니다. 응력은 물체에 외력이 작용할 때 물체가 외력에 반하여 버티는 저항력입니다. 만일 고체가 늘어나는(인장) 경우라면 인장응력(tensile stress) 혹은 장력(tension)이라고 부르며, 단면에 수직인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그림에서 보면 원통형 용기의 경우 영역 1과 2의 형상이 동일하듯이 모든 영역에서 동일한 인장응력을 받습니다. 또한, 곡률에 의해 인장응력 방향이 용기 표면에 수직인 외력를 저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둥근 사각형 용기의 경우 1'처럼 평평한 영역에서는 인장응력 방향이 외력과 수직이므로 외력에 취약해집니다. 이에 따라 용기는 평평한 영역에서 외부로 팽창하는 변형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파괴됩니다. 따라서 둥근 사각형 용기의 안정성을 높이려면 이를 보강해주는 작업, 즉 용기를 두껍게 만들거나 혹은 용기 내부에 구조를 추가해야 합니다. 바로 아래 그림처럼 칸막이가 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죠.
단, 칸막이가 차지하는 영역만큼 담을 수 있는 부탄의 양이 적어지기 때문에 내부압력을 견딜만큼의 적정한 폭과 부탄이 칸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가진 길이의 현재 칸막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칸막이가 하단부가 아닌 상단부에 구멍을 둔 이유는 아마도 용기의 바닥면도 보강해주기 위함이라고 추측됩니다.
이렇게 칸막이는 용기가 받는 압력을 분산시켜 용기를 보강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가스라이터는 정말 안전할까요?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제시한 생활용품안전기준에 따르면 가스라이터는 내부 압력시험, 온도시험 그리고 낙하시험 등을 만족해야 합니다.
내부압력시험: 55 ℃에서 사용한 가스의 증기압의 2배에 해당하는 내부압력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온도시험: 65 ℃의 온도에서 4시간을 견뎌야 하고, 연료탱크나 기타 부위에 이상이 없어야 한다.
낙하시험: 3회 1.5 m 높이에서 각각 떨어뜨려도 연료탱크의 파괴나 자동점화의 지속, 15 mg/min을 초과하는 가스누출이 없어야 하며, 여전히 의도된 방법으로 조작이 가능하여야 한다.
해당 안전기준을 통과한 가스라이터는 온도시험에서 65 ºC 부탄의 증기압인 약 7기압을 4시간 견딜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스라이터 제작 업체인 에이스산업 사에 문의한 결과, 시험을 통해 위의 안전기준을 만족하는 가스라이터를 판매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일부러 강한 충격을 가하지 않는 한 가스라이터가 주머니에서 터질 일은 없겠죠?
- EngNerd
https://www.scienceabc.com/innovation/how-doe-lighters-work.html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Butane-vapor-pressure-vs-temperature-8_fig1_329177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