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A (2)
요새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A를 따라 도착한 곳은 요새 아래, 움푹 들어간 바위 위였다. 위에서 보았을 땐 이렇게나 거대할 줄 몰랐는데, 난간 없는 길고 긴 계단을 내려와야지만 도착할 수 있었다. 구석 어딘가의 가파른 바위 위를 A의 도움을 받아 올라온 뒤 자리를 잡았다. 꽤나 조용했다. 친구들과 수영하러 놀러 온 쿠바 아이들 몇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너는 왜 쿠바에 왔어?”
“같이 일했던 언니가 쿠바 여행이 너무 좋았다고 했거든. 마침 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고, 비행기표도 생각보다 싸길래 덥석 사 버렸어. 이제 쿠바도 미국과 수교를 시작했으니까 스타벅스나 맥도날드가 들어오기 전의 쿠바를 보고 싶기도 했고.”
“미국과 교류를 재개하긴 했지만 별로 바뀐 건 없어. 방어적인 태도는 여전하거든.”
A는 미국과 단교했을 시기의 쿠바를 이야기했다. 물자는 늘 부족했고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든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컵이 없으면 유리병을 잘라서 썼고 그림을 그릴 물감이 없으면 만들었다고 했다.
“내 그림에 신문을 꼴라주 했던 것도 그런 이유이기도 해. 구할 수 있는 재료로만 작업을 해야 했으니까.”
“물자가 제한된 나라에서 사는 게 힘들진 않아?
“힘들지. 개인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어렵고 돈을 많이 벌 수도 없으니까. 해외에 나가려면 피델이나 체 같은 국가 영웅들을 그리는 국가사업에 동원된 후에야 가능하기도 하고..”
“그럼 여길 떠나고 싶었던 적은 없어?”
“그래도 난 여기가 좋아. 큰돈을 벌진 못하더라도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 최소한 돈 때문에 교육을 못 받거나 병원에 못 가는 일은 없으니까. 말레꼰(아바나의 방파제 산책로)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거, 그게 행복이지.”
‘네가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야’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내가 보았던 쿠바의 모습은 행복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골목마다 놓인 커다란 쓰레기통, 그 주위로 널린 지저분한 쓰레기, 2층 집인데 배관이 없어 베란다로 청소 물을 밀어 밖으로 버리고, 공산품이 없어 탄산이 약한 밍밍한 콜라만 살 수 있고 양을 늘리려 물을 탄 것 같은 스파게티의 토마토소스까지.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라는 환상을 안고 도착한 내게 매일 낯설고 실망하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하지만 A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돈의 여부로 결정되는 사회적 계급, 열심히 자신을 밀어붙이고 쉼 없이 달려야 하는 벅찬 일상과 이곳의 여유를 비교해본다면, 이곳 사람들이 더 행복해 보였다. 살아보지 않아서 모른다는 말은 A가 나에게도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는 말을 아꼈다.
아바나를 떠나는 날, A의 갤러리에 들러 포르투갈에서 모았던 조개에 내 이름을 적어 선물로 줬다. Soy, A의 언어로는 ‘나는’이라는 뜻을 담은 이상한 이름을. A는 고맙다며 인력거를 모는 친구에게 부탁해 나를 태우곤 피자집으로 데려갔다. 한 달 월급일 20쿡 지폐를 깨고 피자를 사줬다. 미안해하는 내게 A는 얘기했다.
“다시 오면 네가 사줘. 언젠가 다시 만나. 그땐 아바나 근처 해변에 가자.”
마지막으론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 이메일을 교환했다. 그렇게 나는 쿠바를 떠났다.
A의 부족한 영어와 엉망진창인 나의 스페인어로 어떻게 그 모든 대화가 가능했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 그 애가 했던 말이 정말 내가 기억하는 말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이해할 수 있는 몇 가지의 단어를 내가 짜 맞춰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기에, 서로의 말과 몸짓과 눈빛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장면을 선명히 기억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같은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데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를 떠올려본다. 집중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약속 시간을 잘못 기억한다던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싶은 대로 이해해버린다던가. A와의 시간은 언어가 소통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내 믿음을 간단히 무너뜨렸다.
그 뒤로 A와 나는 짧은 스페인어와 영어로 몇 번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쿠바에서는 와이파이를 쓰려면 돈을 내야 하기에 점점 길어지는 답장의 텀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서너 번의 답장을 받은 뒤에 A는 이제 더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게 우리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몇 달 전 A와 주고받았던 메일들을 다시 읽었다. 아주 기본적인 스페인어와 영어가 섞인 엉망진창의 문장들. 혹시나 하는 마음에 A에게 메일을 보내봤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메일을 보낸 지 4일이 지났다며 제대로 보낸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구글의 안내 메일만 있었다.
유례없는 전염병으로 모든 일상이 바뀌어버린 지금, A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림을 그만뒀다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왜 그만뒀을까, 메일에 답장하지 못하는 사연이 있는 걸까.
그날로부터 5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영어보다 스페인어로 말하는 게 더 편해졌다. A와 다시 만난다면 더 이상 단어와 단어 사이 축약된 말들을 짐작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간 궁금했던 모든 것들을 다 물어볼 수도 있다. 나는 실망하게 될까, 아니면 A를 더 이해하게 될까. 그건 다시 A를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