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 to Z

어떤 문장에는 삶이 담겨 있다

두 번째, B

by 연Yeon


B와 만난 건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한 온천이었다.


얼음과 불의 땅, 요정을 믿는 사람들이 사는 곳. 시규어 로스와 뷔욕의 시리고 몽환적인 음악이 탄생한 나라. 세계지도 저 끝에 위치한 아이슬란드에 언젠가는 가고 싶다고 다짐했었다. 이국적인 이미지만큼이나 먼 거리와 비싼 물가에 다짐만 한지 3년쯤 지났던 것 같다. 그러다 유학생으로 유럽에 가게 됐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을 그때에, 다짐을 현실로 만들었다. 예산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언제 올지 모를 완벽한 여행을 위해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보통 여행자들이 선택하는 링로드 투어(아이슬란드의 국도를 따라 링처럼 한 바퀴를 일주하는 투어) 대신 6일 동안 수도 레이캬비크에만 머물기로 했다.


여행경비를 아끼기 위해 잠은 1박에 10유로짜리 호스텔에서, 투어도 동행을 구해 차비만 내고 다녀왔다. 집에서 챙겨온 쌀과 마트에서 산 식재료로 계란국과 소시지볶음을 해 먹으며 외식비도 아꼈다. 온천으로 유명한 블루라군은 입장료만 십만 원이 넘었기에 깔끔히 포기했다. 대신 시내 외곽에 위치한 현지 온천을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편도로 40분. 그 먼 거리를 친구와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녔다. 새로운 풍경이 주는 설렘 때문이었는지, 탑승 한 번에 9000원을 내야 했던 버스 비용 때문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눈 쌓인 길을 걷고 걷다 보면 작은 산장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입장료는 고작 만 원. 안으로 들어가면 야외에 수영장과 온천 탕 몇 개가 있었다. 영하를 웃도는 추운 공기를 뚫고 따뜻한 탕 속에 몸을 담그면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열기에 숨이 막히면 잠시 일어섰다가, 추위에 몸이 떨리면 다시 앉으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아이슬란드에 머문 5일 중 3일을 이 온천에서 보냈다.



여느 때처럼 오후 세시쯤 도착해 해가 지는 걸 보며 앉아 있을 즈음(아이슬란드의 겨울은 해가 무척 짧은데, 오전 열한 시쯤 해가 떠서 세네 시에 진다.) 누군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B였다.


“안녕, 여기 여행 왔니? 어느 나라에서 왔어?”


B는 칠레에서 온 사람이었다. 현지 사람들이 주로 오는 곳이라 그랬는지 동양인 여자애 둘이 그곳에 있는 게 여간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던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눴다. B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김철수쯤 되는 아주 흔한 이름의 소유자였는데, 그의 삶은 이름처럼 평범하지 않았다.


B는 레이캬비크의 한 호텔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한 달에 2주만 일한다고 했다. 그 낮 시간에 홀로 온천에 온 이유도 쉬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쉬는데도 동유럽 어느 국가에서 일하는 것보다 두 세배는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B는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한 거였다. 칠레에서는 일을 해도 많은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아이슬란드로 왔다고 했다. 오랫동안 고민하는 대신 아무것도 모른 채로 기후도 언어도 문화도 다른 아이슬란드에 홀로 온 것이다. 바닥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말하는 B의 눈빛이 순간 깊어졌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있던 스페인은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했다. 그래서 B와 같은 생각으로 아이슬란드로 오는 스페인 청년들도 꽤 있었는데, 너무도 다른 환경과 추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했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첫날 우리가 만났던 사람도 스페인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 애가 소개해준 사람들 중에 스페인 사람들이 꽤 많았다. B는 그 사람들을 보고 의지가 약하다고 했다. “무언가 얻어가려면 인내하고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지. 삶은 모든 걸 다 주지 않아.”라면서.


B는 아이슬란드어도 조금 할 줄 알았다. 아이슬란드어는 고대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문법이 복잡한 데다 지난 몇 세기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은 보수적인 언어다. 발음도 어려워서 (예를 들면 에이야프야틀라외퀴틀(Eyjafjallajökull)이라던지) 배우기 쉽지 않은 언어였지만 B는 일단 현지인들과 부딪혔다. 하루에 정해둔 분량의 단어를 외우고 현지인들이 고쳐주는 것을 들으며 그렇게 배웠다고 했다.


“일단 부딪혀보는 거지.”


명언, 충고,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며 그 무게를 잃어버린 문장들이 있다. 이것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말이 B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뭔가 달랐다. 젊은 시절 모든 걸 걸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에 도착해 밑바닥부터 시작한 삶. 그렇게 호텔 매니저 자리까지 이르러 높은 급여를 받으며 한 달에 고작 2주 일하는 삶. 많은 이들이 꿈꾸는 성공한 삶을 사는 B. B를 그 자리에 오게 만들었던 건 그 한 마디였다.



어떤 문장은 누군가의 삶 그 자체가 된다. 그 문장이 그 사람의 것이 되기까지의 모든 시간이 담겨있다. 그 문장을 그 사람이 내뱉을 때에는, 그 누구도 그걸 빼앗아갈 수 없다. 오로지 그 사람의 입에서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선택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나는 시작이 두려워질 때면 B를 생각한다. 막연한 미래에 겁먹기보다 자신을 믿고 일단 행동으로 옮길 때 일어나는 변화를 B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냈다. 그렇게 겪어낸 경험이 녹아있는 문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이제 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아이슬란드는 여행 금지, 제한 조치를 내렸다. B의 상황도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호텔은 여행객의 수에 크게 좌지우지되는 산업이니까. B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실 나는 걱정보단 궁금증만이 남는다. B라면 이 위기도 어떻게든 헤쳐나갔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정말 힘들었지. 하지만 이겨냈어.’라고 대답할 것 같다. B라면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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