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 to Z

어쩌면 만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세 번째, C

by 연Yeon

C와 나는 같은 반이 된 적이 두어 번쯤 있다. 정말로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우리 학교는 주요 과목을 수준별로 나누어 들었고 그 반이 몇 번 겹쳤다. 언제는 C와 같은 조가 되어 책상을 붙여 앉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내가 그 애를 눈여겨봤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오히려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아서 나중에 C를 자주 보게 되었을 즈음에야 내가 그 애와 같은 조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C가 눈에 들어온 것은 야자시간에 그 애 뒷자리에 앉고 나서부터였다. 그 부근엔 C와도 알고 나와도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고 우린 야자 쉬는 시간이면 만나 수다를 떨었다. 간식을 나눠먹고 수업 얘기를 하다가 가끔 같이 매점을 가기도 했다. 그렇게 C를 자주 보게 되면서 그 애의 존재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

C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완전했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주변에 사람이 모였다. 비교에 전전긍긍하지도 않았고 산뜻하고 명확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했고 원하는 것을 이뤘다. 그 애의 삶에 깊은 갈등이나 남들과의 비교, 자격지심 같은 건 없어 보였다. 나와는 정반대로.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늘 두려움이 함께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실수했다가 맞닥뜨릴 창피와 망신,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대인관계는 늘 스트레스였다. 그게 싫어서 차라리 투명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을 줄였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조심히 다녔다. 수업시간에 말을 하는 일은 지목당하지 않는 이상 없었다. 아는 질문에도 조용히 속으로 답을 삼켰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은 성공했다.

언제는 안 친한 애와 말을 하게 되었는데 걔가 그랬다.


“우와 나 얘 목소리 처음 들어봐!”


원하던 대로 되었는데 이상했다. 존재감 없는 것이 편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슬펐다. 외로웠다.

사실 알고 있었다. 모든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이 내가 정말로 바라던 것이라는 걸. 나는 그럴 만큼 외향적이지도,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비겁한 선택을 한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한다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테니까. 마주할 예측 불가능한 반응들을 모조리 차단해버렸다.


그 애는 내가 겪는 이 모든 지질함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C를 싫어하는 애는 없었다. 아니, 누군가 그 앨 싫어한다고 해도 C는 연연하지 않을 애였다. 기분 나쁘지 않은 선에서 농담을 던지는 재주도 있었다. 칭찬을 들으면 겸손 대신 맞장구를 쳤다. 이미 인생을 한번 살아본 것처럼 능숙하고 여유 있는 태도까지.

반짝이는 것을 자연스레 동경하는 것처럼 그 애는 내게 빛이었다. 닿을 수 없는 빛.


C와 친해지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원래 같이 다니던 친구들보다 C를 더 찾았다. 쉬는 시간이면 그 애 자리로 달려갔고 시시콜콜한 얘길 나눴다. 내게 주어진 10분의 쉬는 시간은 내 휴식보단 C를 위해 존재했다. 내가 C를 좋아하듯 그 애도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까운 듯 내게 거리를 두는 C의 태도가 가끔 못 견디게 괴로웠다. C가 다른 친구들과 있는 걸 보면 괜히 속이 상했다.


언제는 C의 친구들끼리 다툼이 일어났다. 서로가 갈래갈래 찢어지는 상황에서 난 C의 곁에 자주 머물며 작은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다가 어느 날 C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기뻤다.


나도 이제 그 애의 울타리 안에 들어섰다는 쾌감과 안도가 밀려왔다.


-

졸업을 하고 대학에 가고 나선 C를 자주 보기 힘들었다. 학교도 지역도 일상도 모두 달라졌으니 당연했다. 연례행사처럼 가끔 만나 근황을 공유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유럽여행을 갈 일이 생겼고 그 김에 거기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던 C를 보러 갔다.


C는 여전했다. 작은 기숙사 방에 살면서 자신의 책임을 다 하며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있었다. 귀찮아하면서도 매일 바닥을 쓸고 매 끼니 요리를 해 먹고 짬이 나면 논문도 찾아 읽었다. 현지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며 용돈벌이도 하고 있었다. 내가 C의 방에 놀러 간 날엔 요리부터 간식, 설거지까지 해버리고는 내겐 그냥 쉬고 있으라며 아무것도 못하게 했다. 침대는 항상 내 자리였고 그 애는 의자나 바닥에 앉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데 내게 보여주는 그 친절함이 왠지 공허했다. 어떤 거리감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자신을 보러 왔으니 손님에게 으레 차리는 예의 같은 것처럼. C와 함께 있는 게 그 애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불편했다. 놀러 오라던 말은 예의상 하는 빈말이었는데 내가 눈치 없게 정말 와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때 같은 공간에서 매일 보며 나눌 수 있었던 대화는 이제 할 수 없었다. 적막이 감도는 순간이 잦았고 대화는 좀처럼 이어지지 못했다. 새로운 환경을 접하며 C를 동경하는 마음도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러고 나니 보였다. 그때의 관계를 이어나가게 했던 건 C에 대한 나의 동경 뿐이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내가 놓으면 끊어질 관계였다. 그걸 깨달은 뒤부터는 C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 내 생각에 종지부라도 찍듯 C가 내게 연락하는 일도 없었다.



지난가을 합정역 근처를 걷다가 우연히 C를 봤다. 약간 굽은 어깨, 뿌리가 좀 자란 탈색머리와 알이 큰 안경, 늘 그랬듯 자신과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서 있었다. 눈썹을 움직이며 말하던 버릇도 여전할 테다. 내가 좋아했던 그 모습 그대로.


아는 척하지 않았다.


닿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바라볼수록 내 눈만 멀어버릴 것을 안다. 그 애는 빛이니까.

먼 곳에서 그 앨 가만히 지켜보다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C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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