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 to Z

“괜찮아, 인생이야”

일곱 번째, G

by 연Yeon


G의 발은 조그맣고 통통하고 곡선뿐이어서 어디든 꾹 눌러보고 싶게 만든다. 날렵하고 마른 내 발과 G의 발을 나란히 두면 정반대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괜히 그 애 발을 꾹 밟고 G는 차가운 내 발에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다른 쪽 발을 내 발 위에 얹었다. 나는 또 그 위에 나머지 발을 얹고 따뜻한 그 애 발과 차가운 내 발이 닿아 미지근해지는 온도를 느낀다. 그리고 G를 본다.


G는 입이 아주 조그맣다. 작은 입술 사이로 혀를 내밀며 메롱 하면 조그만 그 애 입은 더 조그맣게 모여서 귀여운 새부리 같아진다. 나는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G의 양볼을 꾹 누르고선 핼쑥해진 그 애 얼굴을 보며 웃었다. G는 울상인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짓는다. 그치만 눈은 웃고 있다. 둥그런 아치를 그리며 작아지는 눈을 본다.


눈이 크진 않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짙은 쌍꺼풀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아주 짙고 깊어서 눈두덩에 4B연필로 그린 것 같은 선이 하나 생기곤 했다. G도 그걸 알고 있었다. “여기에 뭔가를 끼울 수도 있을걸”하며 농담을 던졌다. 그 애는 그렇게 늘 시답잖은 농담을 던졌다.


특히나 라임 맞추는 걸 정말 좋아했다. 걔는 아무 연관도 없는 낱말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요리조리 붙여대곤 좋아했다. 있지도 않은 단어를 만들어내고 기발한 걸 생각해내면 혼자 아주 뿌듯해했다. 나는 G의 실없음에 헛웃음을 지었다. G는 내 반응에 절대 굴하지 않았다. 언제는 그 애의 농담에 빵 터졌다가 조금 자존심이 상했는데 이미 어쩔 도리가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이젠 나도 그 애의 농담을 말 같지도 않은 말로 받아친다.


우리의 농담 따먹기의 끝은 늘 G의 화려한 눈썹 움직임으로 끝이 났다. 걔는 “표정으로도 할 수 있는 말이 정말 많은걸”하면서 여유 있게 웃어 보였다. 환하게 웃기까지도 참 오래 걸린 나는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G의 입과 코와 눈과 눈썹과 아무튼 걔의 모든 얼굴 근육이 신기했다. 그걸 보고 있자면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애 표정을 보고 내가 웃으면 G는 쿡쿡대며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나면 한 텀이 끝났다. 그건 우리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하릴없이 침대에 뒹굴거리고 있던 날 걔는 대뜸 오래된 사랑노래를 틀었다.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 G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를 아는 게 신기했지만 걔는 내가 그런 말을 할 새도 없이 벌떡 일어나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G는 음치였다. 음정을 정말이지 못 맞췄다. 노래의 원래 음과 G의 목소리 사이가 넓어졌다 좁아지길 반복했다. G는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열창했다. 부끄러움에 노래방도 가지 않는 나는 G가 신기했다. 그 애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고 있자니 왠지 나도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두 목소리가 만드는 불협화음에 목소리 하나를 더 얹었다.


널 사랑하겠어 언제까지나

널 사랑하겠어 지금 이 순간처럼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사랑하겠어


평소에 말할 리 없는 낯 부끄러운 가사를 열창하는 우리가 끔찍하고 좋아서 웃음이 났다. 오그라드는 가사는 멜로디에 실어 간단히 흘려보냈다. 촌스럽지만 그런 식으로 전달되는 투명한 마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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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와 있으면 나 혼자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일들을 한다. 농담 따먹기를 하고, 낭만적인 사랑 노래를 열창하며, 평소라면 시도해보지 않을 조합의 음식도 먹어본다. 낯선 것에 경계 없는 G의 모습은 늘 안전한 익숙함으로 돌아가곤 하는 나조차도 별사탕 같은 모험의 세계에 발을 담그게 만들었다. 그 속에서 어떤 날은 성공한다. 또 어떤 날은 보기 좋게 실패한다. 그때마다 G는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괜찮아, 인생이야”. 오래된 사랑노래만큼이나 진부하지만 사실이다. 그 애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왔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마법 같은 그 문장에도 안 해본 것을 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뒤따라오는 거부감은 여전하다. 지금껏 살아온 흔적이 쉽게 사라질 리가 없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깨닫는다. 통통한 G의 발과 뼈와 살가죽뿐인 내 발처럼. 그치만 따뜻한 그 애 발과 차가운 내 발이 겹겹이 얹어져 미지근해지듯 조금씩 닮아가는 우리를 본다. G, 우리는 어디까지 가게 될까. 걔는 아마 이렇게 대답하겠지.


“모르지. 그치만 괜찮아, 그게 인생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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