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H
나는 자주 다른 사람들의 대단함을 발견하곤 한다.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 뭔지 아는 사람, 정성 들인 요리로 스스로를 잘 먹일 줄 아는 사람, 생각지도 못한 관점으로 무언갈 쉽게 설명할 줄 아는 사람, 자꾸만 듣고 싶어지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 나열한다면 끝도 없을 각자만의 좋은 면을 알고 있다. 그게 가끔 비교로 이어져 나를 가난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사람들의 그런 면을 관찰하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부러움이 질투로 이어질 때가 있다. 특히나 내가 바라는 모습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볼 때. 우리가 다른 종류의 탁월함을 가지고 있는 덕에 세상이 더 즐겁다는 것을 알지만, 나의 이상을 이미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사람을 볼 때면 차오르는 질투를 외면할 수가 없다. 무엇이 어떻게 그 사람을 거기까지 닿게 만들었을지, 나는 왜 아직인지 그런 생각들로 새카맣게 번지는 속을 어찌하지 못한 채 보낸 밤이 참 많다. H도 그중 한 명이었다.
H와는 몇 번 만나보진 못했지만 sns로 그 애의 삶을 자주 엿봤다. 차분한 수수함 이면엔 은근한 유머가 있었다. 알게 모르게 준비한 일들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사려 깊게 서술해내는 그 애의 글도 좋아했다. 어렵지 않은 문장들과 장면이 그려지는 묘사들. 별것 아닌 일도 H를 거치면 잘 짜인 비단처럼 반짝 반짝였다. 그리고 그 애의 탁월함에 질투를 느꼈다.
좋아하지만 좋아할 수 없다. 가까이하고 싶지만 못난 마음이 드러날까 거리를 둔다. 그 애가 궁금해 모든 행적을 하나하나 살펴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른척한다. 그런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내가 너무 구려서 슬펐다. 깨끗한 마음으로 좋아할 수 없는 내가 미웠다. 거짓된 나를 견뎌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백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별 의미 없는 그 애의 말에 감추어진 의도가 뭘지 의심하는 마음 같은 것은 갖다 던져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지질한 열등감 따위는 알지 못한 채 그 애의 탁월함에 순수하게 감탄하고 싶다. 그건 현실에선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 나는 혼자 표정이 어색해지지 않게 칭찬하는 연습을 한다. 혼자가 아닌 그 애에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날은 언제 올까 가늠해 본다.
우리는 왜 보이는 그대로를 믿지 못할까. 모두가 보이는 그대로를 믿는다면 세상은 좀 덜 복잡할 텐데. 덜 의뭉스럽고 더 가뿐할 텐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상상하고 의심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나를 갉아먹는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그런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 앞에서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나. 그걸 그저 좋은 방향으로 잘 구슬리는 수밖에. 사실 세상에 진짜 좋고 나쁨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걸 받아들이는 자신만 있을 뿐이지. 어쨌거나 H가 좋은 것은 변함없다. 질투 한 방울 섞여있을지라도 나는 그 애의 탁월함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다. 그 애와 오랫동안 알고 지낼 것이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을 이미 이룬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은 조금 괴로울지 몰라도 좋은 일이다. 질투는 구질구질하지만 효과가 좋은 연료다.
질투 나게 좋다는 말은 사실 최고의 칭찬이 아닐까. 너의 존재는 나를 못 견디게 해. 부러움이 너무너무 커져서 그게 나를 집어삼켜. 그게 괴롭지만 동시에 네 곁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져. 어려운 마음을 견딜 정도로 좋은 마음. 나는 겁쟁이라 이런 말을 H에게 하지 못할 테다. 그러니 이렇게나마 고백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