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따위

포맷과 플랫폼의 지각변동, 그리고 작가

by 박소연

‘소설 따위’

제인 오스틴은 소설이 진지한 문학으로 여겨지지 않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인쇄술이 발전하고, 가정에서 책을 읽는 문화가 퍼지던 시기이기도 했지요. 대출도서관은 책의 접근성을 높였고, 중산층과 여성 독자가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그 변화 속에서 제인 오스틴은 ‘소설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봤습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전무했던 시기에 결혼을 포기하고 글쓰기를 택하면서 삶 전체를 글에 걸었습니다.


포맷과 플랫폼의 지각변동이 있던 시기, 열정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작가. 익숙한 모습이지 않습니까?

한국의 만화가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변화하던 시기에 강풀, 윤태호 작가처럼 작품성 있는 스타 작가들이 탄생한 것과 비슷하지요.


오스틴의 글에서는 기계를 향한 노동자의 분노도, 사회의 긴장도 들리지 않습니다. 작가는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지만, 제인 오스틴은 ‘죄책감과 비참함은 다른 펜이 다루게 하라’고 합니다. 대신 삶의 작은 결, 작은 흔들림을 정교하게 깎아내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를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짧은 생을 살다가 6편 만을 남겼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언어로 전달되는 이야기는 다른 예술보다 작가가 나이 들면서 겪는 변화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녀가 더 오래 살았다면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누릴 수 있었을지 상상도 하기 어렵습니다. 산업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스케일의 정교한 로맨스가 지금 우리 곁에 있을지도 모르지요.


제인 오스틴이 왜 더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없었는지, 왜 더 오래 살 수 없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인 오스틴 이야기의 마지막, ‘작가로서의 신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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