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뒤 '사람'을 보여주다, 만화 <까대기> (2)

우리 모두 버려질 수 있는 노동자

by 박소연

몇 번 쓰고 버려질 노동자로 살기


일을 시작할 때 고용자와 노동자 간에 근로계약을 한다.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하고 고용자가 대가로 급여를 제공하는 약속이다. 사람 간의 동등한 관계로 봐야 하지만, 고용자는 노동자를 소유한 듯, 시간이나 개인적인 영역의 침범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많이 생겼고, 직장 내 따돌림 등 환경을 개선하려는 시도도 마련되고 있지만, 근로계약 밖에 있는 특수고용직 택배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소비자에게 편리한 만큼이나 택배 산업은 편리하게 필요한 사람들을 쓰고 버릴 수 있다. 이들은 금방 버려지기 쉽기 때문에 불안하고, 그래서 뜻을 모으기 어렵다. 현실을 개선할 수 없으니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어제 퇴근 후 고된 하루를 술 한 잔으로 함께 달래던 동료가 오늘 출근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이라도 편한 곳에 갔기를 바란다. 새로 온 동료에게 이름을 묻지 않고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언제 택배가 도착하는지 수없이 전화하던 진상 고객이 준비한 따뜻한 꿀차 한 잔에 마음이 녹아 버리는 일은 사람으로 대우받았다는 느낌 때문이다. 일은 일이지만, 그 일은 사람이 한다. 그 사람을 누군가의 귀한 이로 볼 줄 아는 따뜻함은 오래 남는다. 고된 노동을 견딜만하다고 느끼는 건 이런 순간들과 맥심 커피믹스를 챙겨주기 위해 싸우는 동료, 깨진 수박을 나눠 먹는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먼저’라고 말을 하기는 쉽고 누구나 사람답게 살고자 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현실이 되기는 멀어 보인다.


사람으로 살기


물류센터 밖 인물들 역시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은 청년들이다. 바다에게 서울의 작은 방 한 칸을 빌려주는 대머리 봉식이 형은 텃밭을 가꾸기 위해 무리해서 허름한 집에 들어간다. 주인이 멀리 살아 간섭이 없고 시세보다 싸게 나온 그 집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언젠가 그의 집과 텃밭은 철거될 테지만, 그는 풀과 흙의 냄새를 맡으며 직접 일군 채소를 바다와 나누어 먹는 일이 즐겁다.


바다의 대학 동기 수정은 매일 마감에 쫓기는 하청업체의 디자이너다. 어렵게 시간을 내 바다와 차를 마시러 나왔지만 ‘너는 만화를 계속 그린다니 다행이야’라고 대리만족을 하며 카페에서 잠이 든다. 그녀는 이직을 하는데, 직장을 옮기는 이유는 단 하나의 이유는 잠을 더 잘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도 서울의 높은 물가에 버거워하며 까대기 시간을 늘린다.


택배 산업이 주는 일상의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그 역시 꿈을 가진 사람, 청년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는 점에서 만화 〈까대기〉는 충분히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사회가 완벽했던 시대는 없지만, 발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대중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그런 공론화를 이끌어내는 시작으로 만화는 적합한 매체다.


택배 이야기가 담긴 택배 상자, 도서 〈까대기〉


만화 〈까대기〉는 연재가 아닌 단행본 도서로 발행되며 독자를 처음 만났다. 콘텐츠는 첫인상부터 대중을 사로잡아야 하고 도서의 첫인상인 책의 물성은 내용과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도서 〈까대기〉를 손에 쥔 독자는 택배 상자를 든 느낌을 받는다.


표지 이미지는 화물차 안에서 택배 속에 쉬고 있는 까대기 알바의 모습이다. 이미지를 덮고 있는 무광 코팅은 소박한 노동자의 느낌을 주며, 제목은 택배 포장에 사용하는 박스 테이프가 에폭시로 구현되었다. 택배 상자를 연상시키는 색의 면지를 넘기면, 택배 산업의 전문 용어와 특징을 활용해 구성한 목차가 나온다. 대중적이고 단순한 제작 사양을 활용해 책의 물성에 작품이 담고 있는 정신, 소재와 주제를 잘 담아내고 있다.


내용의 구성 역시 소재의 형식적인 면을 잘 활용하고 있다. 목차는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용어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뉜다. 전반전은 꿈을 이루려는 씩씩한 보편적인 청년 캐릭터 바다를 통해 택배 산업의 이해를 돕는다. 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와 산업 속의 다양한 역할,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후반전에는 물류와 택배 시스템이 가진 사회적인 문제에 집중한다. 채도가 낮아 차분한 톤으로 일상의 노동을 과장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그림을 에세이 형식으로 표현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스토리에서 보자면 단행본으로 가장 먼저 독자와 만나는 만큼, 단행본 전체를 관통하는 시작과 완결의 구성이 필요하다. 세부적으로 분절된 에피소드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청년 바다가 까대기를 시작하면서부터 계절별로 흘러갔다면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택배 대란과 택배 노동자들의 현실을 큰 줄기에 녹여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꼭지별 소제목이 부각되는 디자인이었다면 소제목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전체적인 흐름과 주제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3단의 6칸을 기본으로 정하고 그 규칙을 지키는 성실함은 작품 전체를 신뢰하게 한다. 차분한 톤과 프레임, 과시하지 않는 부드럽고 담백한 선은 현실과 일상의 무게를 표현하는 이야기로 과장이 없어 더욱 설득력이 있다. 힘들고 괴롭다고 아우성치지 않고, 담담한 표현에 진실이 느껴진다. 직접 까대기로 6년을 일한 작가의 인터뷰는 작품에 힘을 실어주고 만화 밖 현실까지 영향을 준다.


〈까대기〉에는 없는 것


서문에서 작가는 이 작품은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이야기한다. 전업으로 뛰어든 만화가가 아닌 생활인으로 버티며 만화가가 된 작가와 까대기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만약 까대기가 픽션으로 묘사와 극적인 연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극적인 전개와 함께 독자와 주인공들을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노동운동을 직접적으로 다루었던 〈송곳〉(최규석, 네이버 웹툰, 2013)은 시작부터 작품의 주제와 소재, 목적을 등장인물과 함께 인상적으로 독자에게 소개한다. 근로노동법을 줄줄 외우며 밀린 월급을 되찾아주는 구고신과 부드럽고 신사적인 이수인이라는 고민하고 갈등하는 캐릭터가 안 어울리는 조합으로 전개된다. 크고 작은 캐릭터의 배경, 감정과 갈등을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다루고 노동운동의 세대교체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과 거대 외국기업 ‘푸르미’에 맞서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허구임을 알면서도 이 작품에 친밀감을 느끼며 감정은 뜨거워진다. 허구, 즉 픽션이지만 현실을 연상시키며 어딘가 있을 법한 현실적인 캐릭터로 픽션이 취할 수 있는 장점을 취하며 독자들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한다.


작가와 작품을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자전적인 작가로 앙꼬의 〈나쁜 친구〉(창비, 2012)나 크레이그 톰슨의 〈담요〉(탑셀프, 2003)는 아슬아슬하게 현실과 허구의 줄을 타기도 한다. 체스터 브라운의 작품에서 만화의 특성을 활용해 유쾌하게 현실을 비트는 쾌감은〈까대기〉에는 없다. 〈송곳〉의 결말이 ‘지속하는 노동운동’이었다면, 〈까대기〉는 결말이 나지 않았다.


(계속)


이 글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20 한국만화웹툰평론 공모전에서 기성부문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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