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뒤 '사람'을 보여주다, 만화〈까대기〉(1)

작품과 작가의 삶이 함께 만든 전방위 영향력

by 박소연

편리함을 위해 사람을 갈아 넣다


‘아침에 주문해서 오후에 받으세요!’ 자주 이용하던 온라인 몰에서 하루배송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드론 배송이 가능해졌나?’였다. 하루배송은 이제 우스울 정도다. 밤에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신선한 식품이 도착하는 새벽배송도 생겼다. 익숙해질까 겁이 나는 편리함이다.


물류신문에 따르면 택배 산업은 현재 6조 원 규모이며, 2020년 10%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판데믹으로 발전한 코로나19로 이 편리함은 가속화되면서 택배 산업에서 가장 큰 기업인 CJ 대한통운은 20%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제 택배는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빨리빨리’ 문화가 빨리 없어질 리는 없으니, 만나지 않고도 이전의 속도로 일이 되려면 더 많은 물건이 신속히 이동해야 한다. 사람 간 접촉을 막기 위해 비대면 배송이 확대되었고 필요한 물건의 배달은 늘었지만, 배달하는 사람은 만나지 않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문 앞에 놓인 택배는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아주 잠깐 만나던 택배기사의 존재도 잊게 되었다.


어떤 서비스나 물건이 사용자에게 단순하고 편리할수록 그 뒤에는 막대한 업무량이 뒷받침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 많은 업무량을 말하면서 ‘갈아 넣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우리는 사용자로 편리하게 많은 것을 소비하고 또 직장에서는 그렇게 갈아 들어가는 사람, 노동자이기도 하다. 만화〈까대기〉는 택배로 대표되는 편리함 속에서 지워진 사람과 노동을 보여주고, 작품과 분리할 수 없는 작가 개인의 삶이 함께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전방위로 영향을 주고 있다.


꿈을 이루려는 청년을 통해 사람을 보다


어릴 때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던 청년 바다는 서울로 올라온다.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 나머지 시간에는 만화를 그리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하고 있다. 가장 힘든 알바로 악명이 높은 ‘까대기’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시급이 높고 짧은 시간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대기라는 창고나 부두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같은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서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을 가리키는 단어에서 온 ‘까대기’는 물류센터에서 택배 상자를 내리고 올리는 업무를 맡는다.


이만한 시급도 없기에 까대기를 하며 생활비를 벌면 오후부터 새벽까지는 온전히 만화를 그릴 수 있기에 힘들지만 바다는 열심히 일한다. 하루가 모여 일주일, 한 달이 되니 까대기 일이 몸에 익고 나름 수월해진다. 불평 없이 몇천 원 더 벌기 위해 점점 더 일을 늘려가던 바다는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종범을 만나 항의를 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본다. 다른 근무환경을 겪어보고, 매몰차게 거절을 하고,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하면서 청년 바다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겠다고 다짐한다.


바다는 과메기가 담긴 택배 상자를 보며 한겨울 식구들과 과메기를 함께 먹던 추억을 떠올리고, 대학 여자 동기를 만나기로 한 날 들뜬 마음에 택배 상자에서 그녀의 메시지를 볼 정도로 평범하고 보편적인 청년이다. 그를 매개로 택배 상자 뒤 거대한 택배 산업 속의 사람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성실하고 평범한 청년 바다가 전달하는 현실의 조각들


바다가 부모님이 운영하던 식당의 풍경을 묘사한 장면은 택배 산업을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물건을 선택해 재화와 바꾸기로 하는 주문자가 있으며, 그것을 제공하는 판매자가 있다. 물류와 유통은 기본적인 재화의 교환을 먼 거리에서도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산업이다.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하고 가게주인이 음식을 전달하는 아주 간단한 과정이 온라인과 긴 물리적 거리로 연장되었을 뿐이다. 택배는 이 산업의 끝에서 소비자와 가장 가까이 있다.


바다는 그가 만나는 택배 산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이야기와 노동환경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과거 인쇄소 사장, 전 공무원, 밤에는 학원 원장 등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불법으로 고용되어 언제 추방될지 몰라 언제나 불안한 외국인도 있다. 구급차에 실려 갈 정도로 몸이 좋지 않지만 다시 출근하고,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비에 배달하다가 넘어져도 수수료 700원을 줄 상자가 무사한지 먼저 걱정하기도 한다. 이들이 택배 일을 하는 이유는 다른 모든 노동자와 같다. 돈을 벌어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다.


(계속)

이 글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2020 한국만화평론 공모전에서 기성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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