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뒤 '사람'을 보여주다, 만화 <까대기> (3)

'몸도 마음도 파손주의'

by 박소연

〈까대기〉만의 결말, 현실로 확장되는 작품


〈까대기〉에도 극적인 전개를 위한 요소와 캐릭터는 있다. 인쇄소 사장이었던 우 아저씨를 비롯한 몇 캐릭터에 집중한 서사를 보완하면서 반란을 꿈꿨을 수도 있다. 만화가 가질 수 있는 허구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담백한 에세이 형식을 취하면서 표현하는 것은 하루가 모여 이루어지는 노동의 일상이다. 꾸준하고 조용하게 이어지는 성실함과 ‘먹고 사는 일’의 하찮고 지겨운 매일의 위대함을 표현한다. 지극히 현실적이기에 이 만화가 가지는 장점은 현실 세계와의 연결이 쉽다는 점이다. 끓어오르지 않는 대신 ‘그렇구나, 어떻게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게 하며 현실로 작품을 연장한다.


작가는 까대기 일을 창피해했던 것을 언급하며 솔직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작품과 인터뷰 모두에서 작업 현장의 실감 나는 전문 속어들이 내용을 뒷받침하고, 경험한 사람만이 전달할 수 있는 통찰과 진실을 느낄 수 있다. 청년 바다이자 작가는 상자에 담긴 보내고 운반하고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그린다. 물건을 보내고 받는 것은 사람이고, 그 물건을 힘으로 옮기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만화라는 그릇에 담아 전달한다.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기에 노동운동을 보여주었던 〈송곳〉(최규석, 네이버 웹툰)이나, 계약직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미생〉(윤태호, 다음 만화속세상)과 같이 작품만으로 대중성을 얻기 어렵다. 독자와의 감정적 유대도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까대기〉는 작품에서, 작가 개인의 삶에서 예술가이면서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만화 〈까대기〉를 본 사람은 택배 산업의 노동을 생각할 것이고, ‘택배 없는 날’과 그를 둘러싼 논란과 불편함을 기억할 것이다. 거대한 편리함 속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게 하고, 택배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했다. 그러나 작가 개인의 삶에서 출발한 첫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에 향후 발표될 작품의 소재에 확장성이 우려되고 〈까대기〉가 만화로서의 예술성과 가능성을 더 보여주었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창작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스토리와 섬세한 기교는 더 강력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중요하다. 간혹 영화 〈기생충〉(봉준호, 2019)처럼 지나치게 뛰어난 스토리와 표현력이 메시지를 덮을 수도 있다. 가난한 두 가족의 다툼을 보는 관객의 마음은 너무 아파 그 다툼의 본질인 ‘가난은 나쁘다’는 메시지를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 〈은교〉에서 작가의 영리한 기교로 퇴폐가 순수로 둔갑하듯, 창작자가 노련하게 표현기법을 활용할 줄 안다면 차원이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밥보다는 죽


〈까대기〉는 지난 8월 14일 ‘택배 없는 날’을 위해 얼마나 오래 많은 택배기사들 사이에 논의가 필요했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전국 택배기사들이 ‘쉬는 날’을 선포하면서, 결코 쉬는 것이 아닌 택배기사들의 근무환경이 기사화되고 주목받았다. 휴일 물량은 모두 다음날 배송하는 근무상황이 알려지면서 네티즌 사이에서는 ‘어차피 다음날 다 해야 하는 일이면 굳이 쉴 필요가 있나’, ‘어차피 할 일이면 하루라도 쉬는 것이 낫지 않나’는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택배기사들이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에게 상황을 알리고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계기가 중요했다.


바다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만화가를 해보라’는 우 아저씨의 말에 기왕이면 밥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만화 〈까대기〉는 매일 먹는 밥 대신, 아플 때 먹는 죽처럼 많은 노동자의 마음을 데우고, 영양을 공급해 주며 위로하는 ‘죽’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꿈을 가진 청년이 건네는 ‘몸도 마음도 파손주의’라는 독백은 많은 사람을 위로했고 택배 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보살피는 말이었다.


〈까대기〉에서 택배 노동자들은 ‘여기 있지 말고, 좋은 일 빨리 구해서 편해져’라는 말을 인사처럼 한다. 편리함을 대표하는 전국하루배송 시스템 속에서 일상을 온전히 견디며 먹고 사는 일,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는 무게와 가치를 가지고 온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노동자에 자신의 노동을 투영해볼 수 있다. 생생한 에피소드는 장소만 다를 뿐, 매일 다수의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 앞에 놓여있는 택배 상자에 숨은 노동의 존재가 지워지듯 어떤 일에서도 노동자의 존재는 지워질 수 있다.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그 뒤의 사람을 볼 때, 배려하는 여유가 생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현실을 부정하거나 이상적인 도덕적 가치가 아닌,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까대기〉는 만화가 가지는 허구의 장점을 최소화하면서 오히려 그 영향력을 키웠다. 많은 채널을 통해 꿈을 가진 작가 개인의 삶이 노출되었다. 성실한 노동이 주는 진실한 이야기와 작가에게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서 동시대의 현실을 개선할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까대기〉는 현실과 함께 호흡하며 사회에 영향을 주는 부드럽지만 강한 힘을 가진 작품이다.


*이 글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20 한국만화웹툰평론 공모전 기성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 택배 이야기가 만화로 나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서 이미 작가 섭외도 마쳤는데 문제는 취재였다. 그 무렵, <까대기>가 출간되었다. 내 머릿속 책은 재미는 있었겠지만, <까대기>만큼 생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책 <까대기> 를 손에 들자마자 이 책에 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한국만화웹툰평론 공모전이 실행에 옮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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