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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피디 Mar 18. 2021

유족에게 사죄한 5.18 계엄군

공개적이어야 하는 어떤 사과

고등학교 때 세계사 시간은 항상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세계사 선생님은 갈색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못생긴 세계지도를 그리며 연기를 섞어 왕조의 부흥과 몰락 이야기를 늘 재밌게 들려주셨다. 담임도 맡지 않으셔서 학생들은 선생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세계사는 수능에 특별히 중요하지는 않은 과목이라 우리는 그저 재미있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했었다.


세계사 시간이었다. 춘추복을 입었던 걸로 기억하니, 5월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선생님이 들어오시자마자, 어떤 상황을 설명하셨다.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군인들이 민간인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군인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키가 작아 늘 맨 앞에 앉았던 나와 짝궁을 콕 집어 의견을 물어보셨다.


'당연히 유죄'라고 대답했는데, 선생님은 '상부의 명령을 받았고 군인은 복종하지 않으면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 자신이 위험해진다. 그래도 유죄인가' 라고 내게 되물으셨다. 짝궁은 '명령을 받았으니, 무죄'라고 했다. '뭐? 넌 내가 아는 사람이냐?'라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짝궁에게 '우리가 군대에 있다고 하자. 내가 너에게 네 짝을 죽이라면, 죽일 것인가? 네 짝은 잘못한 것도 없다.' 라고 물으셨다. 짝궁이 머뭇거렸던 기억이 난다.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는 고등학교. 대학진학준비에만 집중하던 때, 그 날 그 수업은 학창시절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수업이었다.  어떤 윤리수업보다 깊은 생각을 하게 했었고, 그때 느꼈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잊을 수 없다. 매일 반복적인 공부로 무뎌진 우리를 자극하는데에는 '유죄인가, 무죄인가'의 극단적인 질문이 필요했을 것이다.


삭발을 했던 적이 있는데, 여고에서 삭발을 한 학생은 아주 드물어서 수원 시내에 소문이 났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내가 삭발한 일을 공개적으로 야단을 치곤 했었는데,  그도 이해할만한 것이 따라서 삭발을 하는 아이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다른 선생님이 나타나 발길질을 하면서 말씀을 마무리하지 못하셨지만,  그때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세계사 선생님이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었다.


어제 보도된 이 아름다운 일이 그 선생님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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