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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피디 Apr 23. 2021

뉴욕, 가난해서 억지로 문화 교류한 썰

뉴욕에서 보낸 6개월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했던 나는 여러 이유로 유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지원하는 6개월 해외 인턴쉽에 선발되었다. 소개해주는 유명한 회사에서 일을 해볼 수도 있었지만, 직접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내 전화 인터뷰를 하는 방법을 택했다. 전공을 살릴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LA로 가고 싶었지만, 6개월은 너무 짧고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지하철로 이동할 수 있는 뉴욕에 집중했다. 편집자가 없어 멈춘 작은 다큐멘터리 프로젝트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포지션을 따냈다. 행정적으로는 인턴십이었지만, 프로젝트 전체의 편집을 맡아 책임지고 완성하는 업무였다.


처음에는 뉴욕 지리도 익힐 겸 맨하탄에 방을 얻었는데, 준비한 생활비를 순식간에 모두 쓸 것 같았다. 둘째 달부터 퀸즈의 아스토리아로 이사했다. 맨하탄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 금방 갈 수 있어서 직장과도 가까웠다.


그리스 사람들이 살기로 유명한 지역인데 그리스 사람은 5개월 내내 딱 한 명 봤다. 내가 살던 거리는 사방으로 모두 히스패닉이었다. 살던 길에서 세 블록 가면 브라질, 더 내려가면 유고슬라비아(였던 것 같고), 다른 방향으로 두 블록 가면 인도 사람들이 사는 거리가 나왔다. 낮에는 안전했지만, 어느 날 회의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는데 그날 다시는 절대로 밤에 다니지 않기로 했다. 더러운 것도, 비누가 묻은 음식도 잘 먹었지만… 목숨은 아까웠다.


퀸즈로 이사했지만, 아주 빠듯한 예산이라 매주 다양한 가게를 돌아다니며 행사 상품만 찾아다녔다. 1달러짜리 피넛버터와 세일하는 채소를 찾아다녀야 했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인도, 멕시코 가게를 가리지 않고 드나들었다. 미국을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사는 ‘멜팅팟’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그들은 서로 섞이지 않는 것 같았다. 다른 거리를 전혀 가지 않는 것 같았다.


유고슬라비아로 생각하는 거리에서 한 가게에 들어갔었다. 무엇을 파는 가게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주인과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언더그라운드>에 대해서 신나게 말했다. 그는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았는데, 영화 속 정치와 역사, 문화까지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언제나 외로웠던 뉴욕에서 그 대화는 아주 즐거웠던 기억을 만들어 주었다.


뉴욕에서 생활비를 벌 수 없어서, 출발 전까지 빡세게 아르바이트를 해 지원금에 보태 가져갔다. 그래도 준비된 돈은 맨하탄에서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같은 일로 취업했다면, 맨하탄에 거주하며 소위 뉴욕커와 같은 생활이 가능할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랬다면, 지금 뉴욕의 밤 문화에 대해서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 취업을 할 수도 있었으나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어쩌면 나중에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난했던 뉴욕에서의 6개월은 가장 싼 물건들을 찾아 억지로 다른 거리로 향하게 했고, 매일 알 수 없는 다양한 언어에 둘러싸이는 상황을 겪으면서 외국인으로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맨하탄에서 뉴요커들과 술집을 옮겨 다니는 Bar hopping과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미국 피자, 칵테일보다는 낯선 가게를 두리번거리는 것도 좋았다… 고 지금이니까 말할 수 있지만, 한동안 뉴욕의 ‘뉴’자도 듣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싫었더랬다. 구글맵으로 당시 살던 거리를 찾아봤더니, 아주 힙한 동네로 변해서 옛날 사람이 된 기분으로 주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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