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Kwangju vs. Gwangju
2000년,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의 일부가 바뀌었다. 몇몇 도시는 영문 정식 명칭을 바꾸어야 했는데, 광주도 그중 하나였다. 그래서 광주는 Kwangju에서 Gwangju가 되었고, 지난 20여 년 간 많은 사람들이 광주를 Gwangju로 접했다.
데이비드 돌린저 박사는 광주항쟁의 중요한 증인일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2021년의 시각으로 조명해야 할 한국 현대사 속에 있었다. 그의 삶은 자체로 독점적인 가치가 있다. 그러나 회고록 memoir은 아주 개인적이고 내밀한 장르이다. 한 사람의 경험, 지식, 느낌을 총체적으로 책에 담아야 한다. 독자가 미국 청년 데이비드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최대한 함께 할 수 있도록 생생하게 전해야 했다. 데이비드 돌린저 박사가 짊어졌던 기억의 무게를 한 명의 개인으로 존중하고 싶었다. 그에게 광주는 언제나 Kwangju 였다.
그러나 이 책을 알릴 때 광주 Kwangju로 소개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이 분명했다. 41년이 지난 광주항쟁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야 했다. 초고를 받아 확인하는 순간부터 이 주제는 마음에 커다란 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고심하다가 책을 열면 독자를 1980년의 한국으로, 광주 Kwangju로 안내하자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가 아는 광주 Gwangju에서, 이런 일이 1980년 있었다고. 돌린저 박사는 표지와 홍보자료에 Gwangju로 표기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다.
종종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개인적인 성장으로 보기도 하지만, K를 G로 바꾸는 과정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그때의 공기, 사람들, 삶을 바꾸었던 사건을 본인의 책을 집필하면서 자신의 총체적 기억과 다르게 광주를 적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을 것이다. 그가 목격자로 감당해야 하는 짐이었다. 화상회의가 예정된 며칠 전, 메일로 이 제안을 보냈었다. 애써 괜찮다던 그를 모니터 너머로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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