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일제강점기, 학교에 가고 싶었던 소녀는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다.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은 소녀는뉴스 속에서 일본에게 당당히 사과를 요구하는 당찬 이옥선 할머니이다. 만화 <풀>은 이옥선 할머니의 삶을 다룬 만화로, 다수의 세계 유명 매체에서 최고의 그래픽 노블로 선정했고 2020년에는 만화의 오스카로 비유되는 미국의 하비상을 받았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비롯해 1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한국 뉴스에는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 정식으로 사죄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이옥선 할머니는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 중 하나다. 할머니는 중국 용정에서 아픈 남편,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고향인 한국 부산으로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오는 거리에 살던 할머니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데 55년이 걸렸다.
할머니는 여섯 살 때 학교에 몹시 가고 싶었던 계집아이였다. 홍시와 알사탕이 먹고 싶고, 가난한 집안 살림과 동생들을 돌보던 맏딸이었다. 학교에 너무 가고 싶었던 옥선은 학교에 보내준다는 말에 우동집 수양딸로 들어간다. 우동집에서는 옥선을 술집에 식모로 팔았고, 술집에서 보낸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조선 남자 두 명에게 끌려간다. 이렇게 옥선은 열여섯 살에 다른 납치된 소녀들과 함께 위안소로 보내졌다. 위안부는 일본 제국을 위해 전쟁을 하는 일본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는 여성들이었다.
위안부의 자극적인 이야기와 고통을 호소하는 대신, <풀>은 학교에 가고 싶고 엄마가 야속하고 동생들을 걱정하던 한 소녀 옥선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옥선의 아버지는 똑똑하고 책임감이 강한 그녀가 여자로 태어난 것을 안타까워했다. 여성은 똑똑하면 좋을 것이 없는 시대였다. 여성은 사고파는 자산이었고, 높은 값어치를 위해 순결과 정절이 중요한 문화였다. 위안소의 소녀들이 순결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수년간 성노예로 살면서 얼마나 자신을 혐오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는 일제강점기에 벌어졌던 만행 중 하나이지만, 이 이야기가 세계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전쟁 속에 희생되는 개인과 삶의 강인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뉴스 속 위안부 할머니에서 옥선 언니로
<풀>이라는 책을 펼치면, 독자는 젊은 여성 만화가를 따라 이옥선 할머니와의 대화로 초대받는다. 만화가의 질문을 통해 할머니는 기억을 하나둘 꺼내어 들려준다. 작가는 이옥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면서 일제강점기와 현재의 다리 역할을 한다. 듣는 존재인 작가는 ‘이런 것을 여쭤 봐도 될까?’ 주저하고 고민하며, 휘몰아치던 역사에서 살아남은 할머니의 고통을 함께 느낀다.
이옥선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하는 대신, 작가는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화자로 드러내고 듣는 사람으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춘다.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지만, 그래서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는 전쟁이란 어떤 것인지 생생하고 담백하게 간접 경험을 하게 된다. 400쪽이 훌쩍 넘는 이 책을 읽다 보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옛날 사람이옥선 할머니는 ‘옥선 언니’로 느껴진다.
역사책의 굵직한 사건과 사건 사이, 한복판에 서 있었던 막막했던 옥선 언니의 말에 독자의 가슴은 먹먹해진다. “전쟁은 끝났지만 밥을 먹을 수도 집에 갈 수도 없었어.”
휘몰아치는 역사, 검은 먹과 헝클어진 붓으로 표현된 풀
과거와 현재가 한 페이지, 한 칸에 겹쳐지는 장면들에서 할머니 삶에 아직도 전쟁, 고통, 슬픔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흔적이 검은 먹과 지극히 동양적인 붓의 움직임으로 표현되었다. 김수영의 시 ‘풀’이 시각적으로 살아난 것처럼, 전쟁 속의 힘없는 개인은 짓이겨지고 헝클어진 붓의 흔적으로 마음에 깊고 넓은 파장을 만들어낸다.
<풀>은 옥선 언니가 ‘핵교’에 가고 싶었던 꼬마에서 경제대국을 상대로 당당히 사죄를 요구하는 어른이 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밟히고 바람에 스러져도 언제고 다시 일어나는 풀처럼, 강한 생명력으로 삶을 살아내는 여성이자 평범한 사람이 전쟁에서 살아남아 삶을 지속하는 개인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금숙 작가의 작품에는 아픔이 가득하지만 그 아픔을 통해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세상사의 복잡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풀어내는 작품을 보여주며, 언제나 작화보다는 스토리가 뛰어났다. 그러나 <풀>은 그녀의 이야기와 작화의 결합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김금숙 작가는 이전에도 프랑스에서는 이미 인정받는 작가였지만, 북미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풀>은 영국의 가디언에서 최고의 그래픽 노블,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최고의 만화,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청소년을 위한 그래픽 노블로 선정했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비롯해 1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만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하비상을 받았다.
표지 이야기
국문판 <풀>의 앞표지는 학교에 가고 싶었던 소녀 옥선, 뒤표지는 일제 강점기를 살아낸 할머니 이옥선의 모습이 있다. 미소를 지은 두 초상에서 강하고 부드러운 생명을 느낄 수 있다.
<Grass>라는 제목의 영문판 표지는 낯선 중국 땅으로 끌려가 위안소에 갇힌 소녀들의 뒷모습이다. 위안소는 전기 철조망을 둘러싸 소녀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뒷모습도 앳된 소녀들이 애처롭다. 김수영의 시 ‘풀’을 알지 못하는 영미권 독자들에게 풀과 강한 생명력이 연결되지 않았다고 해도, 동양의 붓과 검은 먹은 분명 인상적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