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꾸는 꿈을 위해~
프랑스에 오면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 ‘프랑스존 닷컴’을 알게 된다. 구인, 구직, 벼룩시장, 각종 해결 안 되는 고민, 궁금한 사항 등 다방면으로 프랑스생활에 대한 조언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 나 또한 자주 이용한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프랑스존 닷컴에서 본 몇 군데에 이력서를 보냈고, 그날따라 하늘이 참 맑은 날 나는 파리에서 첫 면접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일자리를 알아보게 된 이유는 경제적 여유가 우선 순위였다. 프랑스의 여타 젊은 커플들도 왠만 하면 둘 다 일을 하는 편이다. 특히 파리는 집세가 비싼 거도 큰 이유고 여러 이유에서 전업주부가 많이 없기도 하다. 영화일을 그만두고 실로 얼마 만에 보는 면접인지 기분이 참 묘했다. 대학교 이후 그러니까 15-6년 전 쯤 했던 ‘아르바이트’를 다시하기 위해 나는 파리의 어느 한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 면접을 마치고 식당 사장님께서 곧 일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일단 면접의 결과가 좋아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상하게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우울했다.
퇴근해 돌아온 올리비에에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는 말을 꺼냈다. 그는 정말이지 그 어떤 상황보다 기쁘고 환한 얼굴로 “펠리시따시옹felicitation(축하해!!)을 외치는 것이다. 그의 축하해 라는 말이 이상하게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로 취직이 되었다면 그의 축하가 무엇보다 감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 알바는 그렇게까지 축하받을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최선이었는데, 그의 축하가 나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최선’에만 보내는 축하 같았다. 그리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주루룩... 눈물이 나면서도 나는 직업에 귀천이 있는가! 일을 해서 여유의 돈이 생기면 정말 좋은 거지 더 울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너무나 오래전 대학생 때 했던 서빙알바를 프랑스에 와서 다시 하게 된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괴리감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문성을 가진채 자신감을 갖고 일해왔던 내 사랑 영화일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센치함이 더욱 발동한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내가 했던 비슷한 일을 프랑스에서 당장 찾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그런저런 괴로움이 나를 위축시켰다. 내가 주루룩 주루룩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너무나 큰 축하를 하며 기뻐했던 그가 조금은 미안했는지 조금해보고 할 만하지 않으면 그만 두면 되지 않느냐고 나를 위로 했다. 지금 당장 불어를 아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족스런 일자리를 찾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올리비에는 자신도 한국식당을 제외한 다른 일자리를 더 찾아봐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불어로 된 이력서를 써놓는 것이 좋을 거 같다며 자신의 이력서를 샘플삼아 작성해 보라고 나에게 이메일도 보내주는 것이다. 그렇게 그가 발 빠르게 반응해주고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모습에 조금은 힘을 얻은 밤이다.
나는 그렇게 소극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늘 도전정신이 강한 편이었다.내가 원래 그런사람인지 영화일을 하면서 적극적인 사람이 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나이 마흔에 파리에서 마주한 새로운 현실, 그것은 꽤나 독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나는 다짐했다. 내가 어차피 도전으로 생각하고 살아보기로 맘먹은 파리에서 내가 현재 느끼는 여러 상황들이 내 인생의 퇴보는 아닐까? 하며 나를 괴롭히고 있는 여러 질문들을 잠시 내려놓기로 맘먹었다. 그리고 파리에서 영화일하는 건 또다른 꿈이니까 다시 나는 꿈을 꾸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