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연 Jan 24. 2017

49. 나는 주부....우울증?


노정으로 이사를 와 좋은 기운을 느낀 것도 잠시… 나는 이상하리 만치 스물스물 기분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저번 집보다 넓어졌고 주변 환경은 비교할 수도 없음만큼 좋아졌는데...뭔가...내 맘대로 안되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자존감도 낮아지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하는 생각들을 한거 같다.


나는 대학 졸업 이후, 혼자 벌어 혼자 쓰고 뭐든 내가 결정하고 행동했었다. 모든 여타의 직장인들처럼 말이다. 그러다 갑자기 올리비에에게 생활비를 받는 주부의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닌가?? 몇날 몇일 내 우울증의 원인을 찾아헤매다 보니 그것은 경제주도권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아닌가 짐작해보았다. 일자리를 찾고는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매우 열심히 찾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매일 어학원을 다니며 불어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우리가 파리에서 살았던 집은 대부분 주인 물건이어서, 이사 올 때 거의 가져온 것이 없고 이곳에 와서 모두 새로 사야 했다. 그래서 이 집은 우리에게 첫 신혼집이나 마찬가지였다. 필요한 물건이 참 많았기에 나는 이거 저거 사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말을 꺼낼 때마다 낭트(본인고향집)에 있어 가져오면 돼. 그러나 나는 하루라도 빨리 정리를 해서 깔끔하게 생활하고 싶었는데 낭트에서 장롱을 가져오는데 3개월, 화장대를 가져오는데 5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이사를 하고, 3개월이 넘은 상황에서도 집은 늘 내일 이사 나갈 집의 느낌이었다. 홈스윗홈의 신혼집과는 차이가 멀어도 파리 서울만큼 멀었다.


서랍장이 너무 절실히 필요하다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장롱 가져오고 난 뒤에 고민해보자 이런 식인 거다. """고민해보자니????"""" '사자'도 아니고????? 그러니 3개월 이상 모든 옷들이 바닥에 다 박스채로 있었다. 낭트에 있다 있다 할때는 그래 절약차원에서 가져다 쓰는게 좋은거니까...하면서  나도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그가 가져온 장롱으로 그와 나의 옷가지들이 해결이 되지 않았고 서랍장을 다시 사자고 하니 인상을 쓰며 내가 옷이 너무 많탄다. 그리고 안입는 옷은 버리란다. 이것 참... 안입는 옷들 없는데...

뭐 하나 살때 마다 너무 신중한 그의 성격때문에 난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화가 쌓이고 우울해지기 시작한거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돈을 안 벌고 있어서 그런가? 내가 돈을 벌면 나에게도 구매에 대한 주도권이 있을 텐데 싶으면서 우울감이 휘몰아친 것이다. 게다가 한국이라면 편하게 인터넷 쇼핑으로 팍팍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컸다. 한 번은  배달 비용을 아끼겠다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황에 직접 세탁기를 사서 오는데 계단에 입성하기도 전, 차에서부터 이것을 내리면서 세탁기 무게의 심각성에 너무 깜짝 놀랐다. 세탁기를 4층까지 같이 올리고 난 후 나는 일주일을 허리가 아파 고생했다. 정말 계단에서 한걸음 한걸음 그 끔직한 무게를 견디며 세탁기를 끌어 올리는데 밑부분을 잡고 있는 올리비에랑 세탁기랑 다 굴려버리고 싶었다.


이상하리만치 느긋하게 생각하고 느릿한 프랑스 스타일, 불편함이 너무 일상인 이 나라

정말 너무나 빠릿빠릿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한민국 스타일과 좀 섞을 순 없을까???

나의 험난한 미래가 너무나 선명하게 예상되는 날들이었다!

4월 튜울립이 한창인 우리 동네 시청앞 (일년 중 가장 예쁜 순간인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48. 파리 근교로 이사, 새로운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