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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Sep 24. 2015

27. 시골남자 올리비에의 어마무시 한국적응기


그가 도착한 다음날, 나는 출근을 해야 했고 혼자 남은 올리비에는 시차 적응을 위해 집에서 낮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나와 만나기로 했었다. 프랑스와 한국의 시차는 8시간으로 (썸머 타임인 경우 7시간) 한국이 8시간 빠르다. 한국이 밤 12시면 프랑스는 전날 오후 4시인 것. 그러니 나는 자야하지만 시차적응중인 그는 내가 자는 내내 깨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국이 아침 8시가 되면 프랑스 시간으로 전날 밤 12시가 되는 거니 그는 아침이 돼서야 졸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출근을 하고 난 뒤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비극이 시작되었다. 내가 살던 불광동 집은 아파트단지가 아니라 단독 주택과 빌라들이 많이 모여 있는 동네였다. 그래서 서울이지만 시골 같은 느낌을 많이 내는 동네여서 난 참 좋아했다. 나의 집에서 잠을 청하던 그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방음의 허술함이었다. 아침에 내가 출근하고 나면 동네로 찾아드는 분들 바로 “냉장고 세탁기 고오~물 사요, 세에~타악~ 세에~ 타악~, 달고 맛있는 사과가 한 상자에 만원! 따끈 따끈한 두부가 왔어요” 그가 매일 매일 이 소리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평일 낮에 그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하곤 전혀 무관한 일이었는데... 그것이 그를 미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낮이고 밤이고 잠을 한 5일 이상 제대로 못 자자, 그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의 6월 중순은 꽤나 더워서 에어컨이 필수인데 그는 에어컨 소음이 있으면 또 못자는 거다. 더운데도 우리는 선풍기 에어컨도 켜지 못한 채 자야 했다. 그리고 하루 밤을 자고 나더니 침실에 놓인 무지하게 큰 텔레비전에선 기계냄새가 (도대체 그게 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난다며 방에서 텔레비전도 빼자 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개봉을 앞둔 영화로 너무 바빠 일찍 퇴근도 못했기에 그를 만난 이례 가장 예민한 그를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잠을 일주일 이상 제대로 못잔 올리비에를 위로하기 위해 나는 사방이 자연으로 둘러싸인 <아침 고요 수목원>으로 주말이 되자마자 그를 데려갔고 드디어, 그에게서 한국 도착이후 처음으로 편안한 얼굴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주말여행 후 다시 도시로 돌아온 우리, 나는 친구들에게 올리비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도 내가 안절부절하며 올리비에의 눈치를 보는 것을 내 친구들이 눈치 챈 것이다. 그가 프랑스로 돌아가고 나서 나의 모든 친구들이 그가 너를 좋아하는 것이 맞냐 그의 우울한 얼굴에 깜짝 놀랐다. 웃는 척도 안 하는 거 같더라 너무 힘든 티 많이 내더라 등등 듣기 좋은 이야기들은 하나 없었던 거 같다. 초반 시차적응의 큰 실패가 그도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그간 살면서 내가 그리 신경도 안 썼던 많은 부분들이 그에게는 큰 문제가 될 줄은 상상도 못해 나 또한 혼란스러웠다. 그는 컨디션도 안 좋고 관심도 없는 도심휴가를 보내고 있다 보니 모든 것에 반응이 시큰둥했던 게 사실이다. 나는 3주 동안 그에게 다양한 한국의 매력을 보여주려고 없는 시간을 쪼개 노력했지만 절대적으로는 내가 휴가를 많이 내지 못했기에 계속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맘에 들지 않는 점이 있어도 다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나라고 그의 우중충한 얼굴이 좋았겠는가? 막판으로 갈수록 나 또한 아니 뭐 그렇게 서울이 싫은 거야? 탐구정신 너무 없는 거 아냐? 기대보다 다른 점이 있더라도 이왕 온 휴가 좀 좋은 점도 보려고 노력하면 안 되는 거야 등등 의문과 실망이 용솟음쳤지만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거 같다.     


하지만 참으로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100퍼센트 모든 한국음식을 사랑했다. 매운 것만 아니면 그는 정말 정말 잘 먹었다. 거리의 가득한 군것질 거리에 놀랐고 맛있어 했고 특히 우리들이 식당에서 여러 음식을 시켜 앞 접시로 나눠먹는 문화를 참 좋아했다. 당시 나는 청주MBC의 한 라디오에 개봉영화를 소개하는 게스트로 출연중이어서 녹음을 위해 청주를 내려가야 했다. 그리하여 하루저녁을 아는 동생에게 올리비에를 부탁했었고 부산 아가씨인 그녀와 저녁을 같이 먹고 오더니 ‘나눠 묵자’를 배워 와서는 지금도 이것저것 시켜 먹을 때마다 사투리 발음으로 ‘나눠 묵자’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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