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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Sep 30. 2015

33.잊을수 없는 2008년 12월 31일


9박 10일의 낭트 여행을 다녀온 후 그의 면접결과가 좋아 그는 곧 파리로 이사를 가게 될 예정이었다. 작년의 만남부터 올해까지, 나는 동화 속에서 현실로 돌아왔고, 그가 한국을 다녀간 후 확신하지 못했던 마음을 추석기간 낭트 방문을 통해 정리, 확인 할 수 있었고, 그로부터 파리로 오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받은 상태였다. (훗날 그는 나에게 말했다. 파리로 직장을 옮기면 소연이 프랑스에 오는 것이 조금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싶어서 서둘렀다고 한다) 2008년의 연말엔 정말 모든 것을 정리하고 프랑스로 갈수 있을까? 에서 이제는 가볼까? 로 구체적인 고민을 하던 와중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던 2008년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이었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나는 고향 제천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와 원주병원에서 검사를 하러 왔는데 의사로부터 큰 병원에 가봐야 할 거 같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곧바로 버스를 타고 나는 원주에 도착했다. 아빠를 검사한 의사를 만났고, 의사는 아버지가 뇌종양이며 앞으로 두세 달 정도 밖에 사실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의사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너무 현실감이 없어 눈물도 나지 않았고, 네.. 한마디만 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내 앞에 펼쳐진 아빠의 뇌 MRI사진에는 매우 큰 사이즈의 종양이 한눈에 보였다. 그 절망을 어떠한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세상이 무너지고 무너졌다. 우리는 아빠에 대해 조금이라도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기 위해 서울의 큰 병원에 문의를 했고, 7일 후 2009년 1월 7일 아버지는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조직 검사결과 역시나 아버지는 뇌종양말기환자가 맞았다. 또한, 후유증으로 왼쪽 마비가 되어,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여러 재활훈련을 했지만 왼쪽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셨다. 아버지 또한 갑자기 본인에게 닥친 그 상황을 많이 힘들어 하셨지만, 누구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것은 건강하게 다시 일어나 살고 싶어 하셨고 강한 재활의지를 보여주셨고 다시 걸어서 나가리라 자기 자신을 굳게 믿으셨던 점이다. 한 때, 아버지가 수술 후 컨디션이 정말 좋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항암치료와 1년 9개월의 입원생활은 아빠와 엄마, 두 분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나는 회사 일이 끝나고 가급적 매일 아빠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만약에 그 해 아버지가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난 아마 2009년도... 한국의 삶을 정리하고 프랑스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발병 이후 나는 한 번도 그 고민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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