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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Oct 07. 2015

37. 쿨하지 못해 미안해

그날 새벽 서울에 도착해 우리는 거의 말이 없었고, 나는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출근을 했다. 그에게서 점심시간에 시간이 되면 광화문의 대한항공에 같이 갈수 있냐는 연락이 왔다. 그가 프랑스로 돌아가는 티켓을 알아봐야 하는데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다. 아 진짜 한대 콱 쥐어박고 싶었지만, 꾹 참고 대한항공에 도착했고 올리비에 이름을 대며 티켓 좀 변경하려 구요 하는데 “전화로 변경 하셨는데? 날짜를 다시 바꾸실 건가요?” 하는 거다. “네? 벌써 다 바꾸었다구요? 언제 바꾼 건가요?” 하고 물으니 일주일 전 인 거다. 나는 누가 내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치고 간 기분이었다. 정말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의 눈을 보며 “ 올리비에 이미 다 바꿔 놓은 거야? 그런데 나 여기 왜 오라 했어?” 라고 묻자 나랑 이야기해서 다시 한 번 날짜를 상의하려고 한거다라는 것이다. 아니 이미 일주일전에 나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혼자서 다 바꿔놓은 날짜를, 이제 와서 나랑 상의 후에 돌아가는 날짜 잡으려고 했다고 하면 어느 여자가 인내심 넘치게 “아 그래? 고마워 나를 위해 며칠이라도 더 한국에 있어주니까 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아 정말 밀려드는 배신감에 모든 믿음이 다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별로 이성적으로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미친 여자처럼 남들 시선도 아랑곳없이 광화문 대한 항공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 동안 쌓인 분노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당장 가! 오늘 가라고!”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자리를 떠났다. 진짜 저게 인간인가 싶고 남자친구인가 싶었다. 정말 당장 다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날은 엄마가 온 가족이 밥 한번 먹자며 식당을 예약해 둔 날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올리비에가 빨리 돌아가게 됐다는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데 말이 안 떨어졌다. 실업급여 때문에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하자 “그래? 그런 건 오기 전에 알아보고 왔어야지?” 하시는 거다. 당연하지! -.- 그날은 당연히 나와 올리비에를 위한 자리였건만, 나는 엄마 앞에서만 웃고 고기가 어디로 들어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렇게 그 밤을 보내고 며칠 뒤 공항에 선 나.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매번 헤어질 때마다 내가 더 많이 힘들어하고 울고 그랬는데, 그때는 빨리 그를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작년에도 이번에도 매번 그가 한국에 올 때마다 내가 그로 인해 뭐 얼마나 행복했나 싶은 게… 챙겨주느라 피곤하기만 했던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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