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연 Oct 16. 2015

39. 2010년 3월 24일,
우리는 헤어지다


내가 처음 그에게 헤어지자는 메일을 보내고 우리는 위태위태하게 4-5개월간 더 대화를 이어나갔다. 사실 그 당시 메일과 전화는 거의 매번 내가 그를 비난했던 시절이다. 어쩜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 너는 나를 위해 무얼 해줬느냐? 그동안 쌓아두었던 게 다 터진 거다. 그가 나에게 하는 말들이 나에게는 다 변명이었고 공허했다. 그가 한국에서 도망치듯 떠난 것이 너무 상처가 되어서 그는 나에게 점점 더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두 달을 있기로 한 약속을 저버린 거, 나와 상의하지 않고 티켓을 알아본 것,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나를 떠나버린 그에 대한 분노는 쉽게 사그라 들지 않았다. 2009년 초부터 나는 프랑스에 살수도 있는 미래를 생각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불어 학원도 다니고, 한식요리사 자격증을 따면 나중에 일자리 찾기가 쉬울까 싶어 한식 요리사 자격증 학원도 다니고 있었다. 나 혼자만 너무 노력하고 맞춰 준거 같아 내 자신이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너를 이래서 믿을 수 없고 실망했고 미래가 없다는 메일, 전화 등등을 하며 피곤한 몇 달을 보낸 후 더 이상 이런 방식은 아닌 거 같아 결심했다.


그리고 2010년 3월 24일, 여러 고민 끝에 정말 끝내자고 선언을 했다. 나에게 앞으로 절대 전화하지 말라고 전했다. 우리는 끝이라고… 복잡한 마음을 안고 절친 둘이 살고 있는 신사동 가로수 길에 도착하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에 대한 실망 분노는 여전하면서도, 뭔가 그와 다 해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거 같은 미련도 켜켜이 쌓여 그녀들에게 복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참을 울고 난 후, 마침 그녀들은 헤어와 메이크업 프리랜서를 하는 친구들이라 내일 아침 파리로 출장을 떠날 참이었다. 그래서 나는 파리에서 혹시나 올리비에 만나게 되면 ‘돌 던저랴!’ 라는 말을 우스개소리를 전했다. 그리고 다음날, 파리에 도착한 나의 절친 들이 한식당과 일본식당이 많이 있는 파리 오페라역 근처 SAINT- ANNE길의 어느 음식점에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던 중… 친구 하나가

“저기 저 남자 올리비에 닮지 않았어? 어머 올리비에다야! 왠일이니???”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고, 절친 들로부터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짜 어이없고 신기했다. 


그리고 이어진 친구의 멘트 “소연아 미안해! 나도 모르게 너무 반가워서 돌은 못 던졌어!” 끙…. 전화를 끊고 나는 한동안 멍해있었다. 우리가 헤어진 다음날,,, 하필 나의 절친 들과 올리비에가 우연히 파리에서 마주치다니… 그리고 그가 매우 수척해 보였다는 친구의 말에, 헤어졌지만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근데 뭐야 나한테 헤어지자는 이야기 듣고 다음날 한식 먹으러 간 거야...참 이 남자 한식 좋아해^^:::)    

매거진의 이전글 38. 우리는 너무 달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