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 인해서 어머니의 자궁에는 가난에 대한 기억이 사무치게 새겨졌을 것이다. 어머니의 출산을 아버지가 손수 도왔고, 그가 뜨거운 물에 가위를 삶아 우리의 탯줄을 끊어 내던 그날 일을 들뜬 목소리로 들려줄 때면 어머니는 진저리를 치면서 화를 내시곤 했다. 집에서 낳은 게 무엇이 자랑스러워서 그렇게 떠드냐고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어머니의 분노는 진심으로 느껴졌다. 삼십 대의 어머니는 불행한 결혼 생활, 생활고, 세 아이를 길러내는 고단함으로 그늘진 얼굴로 사진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 얼굴에서 나는 캄캄한 동굴 속에 감금된 여성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았다. 동굴의 어둠이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어둠 속에서 내가 태어났다.
쭈글쭈글한 늙은 여자에게나 빠르게 시들어갈 운명의 젊은 부인들에게는 연기 자욱한 동굴 이외에 어떤 세계도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밤에만 말없이 베일을 쓰고 나타날 뿐이었다.
- 샌드라 길버트, 수잔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다락방의 미친 여자』, 북하우스, 2022, 215쪽
시몬 드 보부아르가 튀니지의 어느 마을에서 동굴 속에서 웅크린 채 일하고 있는 여성들을 발견했을 때의 대목이다. 나는 그녀들에게서 내 어머니의 얼굴을 발견한다. 즉 ‘내 삶은 여기서 더 나아질 가망성이 없어’라고 체념한 여성의 얼굴을 말이다. 자기 삶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그 가능성을 찾을 수가 없는 그 감금의 상태.
여자들 개개인은 동굴 속에서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갇히고 만다. 그 동굴은 마치 ‘성의 투쟁의 꿈을 직조하면서 삶의 거미줄에 눈물 흘리는’ 블레이크의 상징적 벌레와 같다.
- 같은 책, 216쪽
아버지의 동생들, 그러니까 삼촌들은 수시로 우리 집에 방문하곤 했다. 그중에 어떤 삼촌들은 어머니의 몸에 손을 대거나, 나와 내 여동생이 그들의 성기를 주무르도록 하거나, 우리의 엉덩이에 그들의 성기를 갖다 대곤 했다.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명확히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인지했는지조차 나는 아직도 그에게 묻지 않고 있다. 그는 이 일에 대하여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없는 일’로 간주했다. 근친상간의 기억을 꺼내 아버지를 추궁하기에 그는 이미 너무 늙었고, 많은 일을 겪었고, 아내를 잃은 남자였다.
어머니의 심연 속에 나는 오랫동안 갇혀 살아온 것만 같다. 어머니와 나에게 자행된 성추행은 오랫동안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컴컴한 어둠 속에 봉인하도록 했다. 세월이 흘러 육십 대의 어머니는 자궁 근종 수술을 받았다. 병실에서 나는 어머니의 입술에 립밤을 발라주면서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자꾸 말라붙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사십 대가 된 나는 자궁내막종 수술을 받게 되었다.
어머니는 사는 동안 무엇을 갈망했을까, 무엇을 꿈꾸었을까, 밤에는 어디로 영혼이 떠돌았을까. 나는 어머니의 동굴에서 태어나 함께 살았고, 탐험했고, 탈출했다. 나는 어머니 땅의 정기를 물려받았고 그 정신으로 새로운 땅을 찾는다.
내가 꿈꾸며 누워 있을 때,
그 땅은 일어서서,
내 앞에 솟아오른다.
초록의 황금빛 해안이
고개 숙인 삼목과 함께,
빛나는 모래와 함께,
빛을 번쩍이면서,
불붙은 나무가 흔들리듯이.
- 같은 책, 225쪽
내 자궁 속에 쌓인 기억은 곧 어머니의 기억이고, 내 어머니의 어머니의 기억이기도 하다. 나는 그 심연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슬픔과 광기와 분노를 느낀다. 밤마다 광포해지는 파도의 포말처럼 그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두 눈을 명료하게 뜨고 아침이 올 때까지 그 소리를 똑똑히 듣는다. 그들이 잊히기 전에, 분해되기 전에. 내 두 손가락을 하나하나 더듬어 그들의 소리를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