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자궁 질환에 대해서 주변에 얘기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내가 이 얘기를 꺼내면 ‘나도 그런 수술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하는 여성들이 한둘이 아닌 것이었다. 친구와 아는 언니, 나와 같이 일한 작가, 디자이너들 모두 자궁과 난소 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 병이 매우 흔한 질병이고, 특별한 치료법이 있는 것도 아닌 만성 질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흔하다는 것은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디’라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와 같이 일했던 디자이너는 20대와 30대의 나이에 두 차례 복강경으로 난소낭종을 제거한 이력이 있었고, 자신의 질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궁에 생긴 여드름이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드름도 완치하긴 어렵잖아요.”
그녀의 말처럼 여성 질환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난소 질환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문제와 매우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특히 크리스티안 노스럽에 의하면 난소 낭종이 발생한 여성 중 왼쪽 난소에서 혹이 발견되는 비율이 높은데, 난소 왼쪽은 여성의 창조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내면의 욕구를 억누르며 남성적 질서를 모방할 때 몸에서는 혹이 생겨나기 시작한다.(크리스티안 노스럽 지음, 강현주 옮김,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한문화, 2000, 201쪽) 나와 내 친구, 아는 언니, 나와 같이 일한 동료들이 난소와 자궁 질환을 갖고 산 데에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깊이 연루되어 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사회 탓, 구조 탓으로 돌릴 수 없는 노릇이다. 자궁은 나의 정신과 영혼, 모든 신체 부위와 장기, 나를 둘러싼 인간, 환경, 사회와 총체적으로 관계를 맺는 살아 있는 기관이자 역사를 품은 장소다.
자궁은 영혼을 품기에 최적인 공간이다. 자궁은 영혼이라는 ‘알’을 품어 빛의 세상으로 내보내는 어둠의 동굴이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이 있다.
그것은 몰약으로 자기가 품을 수 있는 만큼 큰 알을 만든다. 그런 다음 그것을 품어 옮길 수 있는지 보려고 시험한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알을 비우고 그 안에 자기 아비를 누이고 구멍을 막는다. 아비가 든 알은 이전과 똑같은 무게가 나간다. 알을 막은 다음 그것은 이집트로 태양의 신전으로 알을 품고 간다.
- 헤키타이오스의 문장을 인용한 다음의 책에서 재인용. 앤 카슨 지음, 윤경희 옮김, 『녹스』, 봄날의책, 2022
이는 불사조에 관한 고대 역사가 헤키타이오스의 묘사다. 아라비아에 살던 이 새는 오백 년마다 한 번씩 이집트로 날아가 알 속에 품은 제 아비를 신의 장소에 묻고 온다. 이는 상징적인 애도 행위다. 나의 자궁은 죽은 조직들을 피 흘려 빛의 세계로 내보내며, 죽은 영혼들을 품어 그것을 기억하는 구체적인 장소이다. 내 어머니의 심장과 뇌, 뼈, 피부, 머리칼, 손톱, 가슴, 거웃털, 손과 팔, 다리, 냄새까지 구체적인 형상을 빚어내는 어둠의 공간이다. 나의 자궁은, 여성의 자궁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혹’을 키우는 일만 하지 않는다. 그것은 피 흘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흘려보낼 한 방울의 피가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그것은 기억하고 애도하며 어둠을 집어삼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내 어머니의 영토. 밤의 평원. 불가능한 꿈과 도달할 수 없는 당신의 생애, 살아 있음의 상처. 살아 움직이는 물질로서 현존하는 그 장소. 그러니 의사들이여, 우리에게 자궁 적출을 권유할 때는 신중하고 또 신중해주시기를. 알을 품은 새를 함부로 다룰 수 없듯이 그것은 우리의 환희, 기쁨, 슬픔, 분노, 연민, 증오, 혐오, 질투, 환멸, 경멸, 부드러움, 망각, 아름다움, 비통, 열정, 탄식, 위선, 야망, 욕망, 소멸에의 꿈을 담은 그릇일지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