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의 시를 탐닉하던 이십 대의 나는 왜 그렇게 외롭고 서러웠을까. 그녀가 호기롭게 생을 향해 침을 탁, 하고 뱉는 것 같은 그 독기 어리고 처연한 말들은 왜 그렇게 비수처럼 꽂혀 왔을까.
선배가 죽은 것은 2005년 겨울이었다. 나는 휴학 중이었고 휴대전화를 정지시키고 학교 사람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는 상태였다. 후배가 가까스로 우리 집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집으로 전화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 왔을 때 나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사인은 자살이었고, 그는 자취방에서 목을 맸다고 했다. 내가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나와 안면이 있었던 그의 친척 형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눈빛을 피하고 말았다. 학과 교수님과 대학원생들, 학부생들, 그의 친가족, 친척들 저마다 한 구석씩 차지하고 앉아 그저 말없이 술을 마시거나 망연히 앉아 있었다.
입관하기 전에 그의 시신을 보러 들어갔다. 마른 장작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몸과 그의 얼굴. 나는 그 얼굴을 보고도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화장터에서 그의 관이 불 속으로 들어갈 때도 울지 않았다. 그때 그 누구보다 슬프게 울던 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의 옆에는 그녀의 십 대 남자친구가 서 있었다.
우리는 삼각관계였고, 내가 그의 자취방에 찾아갔다가 그 여학생이 그의 방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나는 그와 이별했다. 학교에도 나가지 않았고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그 시기에 나는 한번 자살 시도를 했다. 두어 달의 시간이 흐른 뒤 그의 부고를 전해 듣게 되었다. 스물세 살 무렵의 일이었다.
화장터에서부터 출발한 버스는 우리를 학교 앞에 내려주었고, 겨울의 흑석동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나는 그 길로 친구의 집으로 가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부모님이 있는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그토록 불완전했고 불안한 시기를 건너왔기에, 그 시간의 나는 누구였고, 과거를 들여다보고 있는 현재의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 본다. 이제 나는 과거에서 완벽히 벗어났으며, 더 이상 그때의 내가 아니라고 자부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이라도 그 사건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어떻게 그 시간을 걸어 나왔는가를 차분하게 말해본 적이 있었던가?
그의 죽음, 그리고 그 후로 내가 만난 남자들,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의 남자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마치 업보인 것처럼 돌고 도는 윤회의 수레바퀴. 나는 한때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왜 이토록 불행한가,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그들 때문에 나 역시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불확실한 희망보다 확실한 절망을 믿겠다’던 최승자의 시에 나는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내 꿈을 짓밟아오기만 한 인생아, 마지막으로 한 판만 재밌게 풀려줄래? 그러면 그다음에 내가 고이 죽어줄게. 꽃처럼 피어나는 모가지는 아니지만, 고이 꺾어 네 발밑에 바칠게. 이번에도 네가 잘 풀려주지 않으면 내가 먼저 깽판을 쳐버릴 거야. 신발짝을 벗어서 네 면상을 딱 때려 줄 거야. 그리고 절대로 고이 죽어주지 않을 거야.
- 최승자 지음,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난다, 2021, 27쪽
풀리지 않는 자기 인생에 대한 오기. 그 오기는 자신을 무서운 힘으로 삶 위로 떠오르게 하지만, 삶의 밑바닥으로 처박기도 한다. 나를 배신한 남자에 대한 증오심은 남자에 대한 집착을 낳고,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에 대한 분노가 남성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커지고 결국에는 내 인생 전체에 대한 불신에 이르게 된 어느 날, 나의 자궁은 병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자궁에 귀를 기울였을 때 자궁은 이렇게 말했다.
할 수 있는 한, 가능한 한 멀리 떠나자. 한 세기 전의 겨울로부터 이제 떠나자. 고비사막이나 광활한 산맥으로 뒤덮인, 때때로 굉음의 번개가 내려치는 들판으로 떠나자. 맨발에 파도와 모래가 와서 자신이 속살을 내맡기는 그곳으로든, 모래바람이 불어와 내 피부에 부딪히는 그곳으로든, 살아서 가능한 한 멀리 떠나자.
최승자 시인은 조현병으로 거처를 병원으로 옮기고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재출간하면서 2021년 11월 11일에 출판사와 통화하며 “섞박지용 순무 써는 듯한 큼지막한 발음으로 시인의 말을 불러주었다”라고 한다. 그 시인의 말로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라고 말한 그녀는 길고 긴 침묵 속에서 단말마 같은 시들로 자신을 깊은 피로 속에 몰아넣었던 삶을 향해 비수를 꽂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의 마음속에서 그 서슬 퍼런 시혼을 잃지 않고 살아 있다.
우리의 영혼에 서리가 낄 만큼 추운 계절을 지날 때, 그 혼은 빈 들판을 헤매고 있겠지만 그 시절을 기록으로 남기고 침착히 바라보는 일, 그리고 그 세계에서 천천히 공을 들여 걸어 나오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 춥고 아득하고 막막한 시절을 빛이 들지 않는 곰팡이 낀 곳에 묻어두지 말고 볕으로 꺼내어 이리저리 살피고 곰곰이 들여다본 후 먼지를 탁탁 털어 양지에서 말려주는 일. 나의 자궁에 피가 고이지 않게 양지로 이끌어내는 일. 그것이 우리가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부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