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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May 10. 2018

여행의 부록

타이완 타이베이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얼마나 빨리 끝나버리는가. 
압도되지도 않고 허무하지도 않았다. 
다만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이 잔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 이언 매큐언 <속죄>


인도네시아 - 스리랑카 - 남인도 - 베트남에 이어 드디어, 타이완. 여행의 마무리! 책에 쓰인 문장과는 달리 난 여행이 끝나가는 게 기뻤다. 인도를 겪고 나니 타이완은 부록. 덧붙는 선물 같았다.


단수이

옥스포드 칼리지
진리 대학 대예배당
홍마오청 앞 코스프레 쇼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서 노숙. 2만 5천 원 아끼겠다고 노숙이라니. 이제 무리다. 샤워만 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얼굴에 모기만 물리고... 새벽에 불편한 자리 때문에 깨었다.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충전하느라 공항 TV 옆 구석에 쪼그리고 않았는데, 바퀴벌레가 느긋이 지나간다. 

타이베이행 비행기가 연착이었다. 노숙 때문에 몸이 이만저만 피곤한 게 아닌데. 누웠다가 다시 바로 앉아 책을 읽었다.


단수이 옛길에서 만난 고양이


잠자지 못하고 씻지도 못한 몸을 이끌고 타이베이 중심역에 내렸다. 비가 내리고 추웠다.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많이 따뜻한 줄 알았는데... 아, 4월 초. 이렇게 추운 계절이었구나!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야구 모자를 생명처럼 여기고. 행복해하며 숙소로 들어가 바로 잤다.


빠리에서 바라본 단수이 강
(왼) 빠리 대왕 오징어     (오른) 스펀 왕 오징어

느지막이 일어났다. 호스텔에서 무료 커피를 마셨다. 우와, 이렇게 크게 한 컵을 마셔보는 게. 이게 얼마만인가!

오후 한 시쯤 단수이로 향했다. 홍마오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기다려도 홍마오청 역이 나오지 않는다. 앞에 앉아 있던 한국 여자 아이 둘도 이상한가 보다. 버스 맵을 보고 옆에 앉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그 아이들이 내린다. 나도 따라 얼른 내렸다. 

말을 걸었다. "한국사람이에요?"

그 아이들 대답을 대충 한다. 버스 때문에 정신이 없다. 나는 또 말을 건네려다가. 길 가던 사람들에게 물어 워런마터우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당황한 두 얼굴이 차창으로 보였다. 뭐 물어도 대답을 안 하니 난 나대로 갈 도리밖에. 그 아이들이 워런마터우에 안 갈 수도 있고. 한국 사람에게 말 걸기 포기. 한국인이 많은 여행지에 왔구나!

워런마터우를 보고 다시 버스를 기다렸다. 옆 노부부에게 홍마오청 버스를 물었다. 영어가 유창했다. 노부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같은 버스에 올라서도 다정했다. 대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영어를 정말 잘하세요?" 내가 물었다.

"미국에서 교환 교수로 있었어요."

노부부는 홍마오청에 대해 설명하다가 내가 신부님 단어를 모르자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또 타이난에 꼭 가보라고 말했다. 먼저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그 사이 정이 들었는지 헤어지는 데 마음이 따끔했다.


P.S 두 달 전 2주 동안 타이완을 돌아보았다. 물론 타이난에도 갔다. 노부부의 친절이 계속 마음에 남아있었다.


타이베이

시먼 뒷골목 시장 도시락 가게
시장에서 포장해 온 도시락과 숙소 무료 커피

왜 이리 맛있는지! 감동해 식당에 가기 싫어졌다.


대만 친구 조셀린과 농구 대결
조셀린과 첸이 시장에서 사준 저녁과 포장해 준 죽

호스텔에서 체크아웃.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기다려 준 청년이 있었다. 지하 1층이라 겨우 1층까지 오르며 몇 마디 나누었다.

"한국 사람이에요?
와, 한국 사람이 많이 온다고 해서 이 숙소에 머물렀는데.
처음 보았어요.
오늘 떠나는 데 이제 만나다니..."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에서 온 다비토. 부산에 있는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었다. 4학년이라 한국말을 아주 잘했다. 장학생으로 똑똑하고 게다가 잘생겼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다비토는 점심을 먹고 나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비토가 음료 값을 계산한다. 미안해진 나는 같이 저녁을 먹자고 물었다. 다비토는 타이완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만나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물론 OK!


타이완 친구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궁금했는데 조셀린과 첸, 여자 둘이 나왔다. 우리들은 야시장을 거닐었다. 토부 수프를 먹고 밀크티를 마셨다. 딤섬 샤오롱바오를 먹고 와플도 먹고. 길에서 시식을 하며 사람들로 빼곡한 소란스러운 시장을 즐겼다. 이미 배가 부른데도 먹고 싶은 거리 음식들이 가득했다.

다비토와 조셀린은 카우치를 통해 알게 되었다. 조셀린은 다비토가 한국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사실 둘은 처음 만났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조셀린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더 반가워했다. 조셀린이 첸을 데려왔고 다비토가 나를 데려간 셈. 

첸은 영어가 서툴렀다. 헬로~, 하이~ 정도만 알고 있어서 구글 번역기로 대화했다. 다비토를 포함해 조셀린과 첸, 셋 다 상냥하고 다정한 좋은 친구들이었다. 조셀린과 첸이 저녁 식사에 간식도 사고 선물까지 한가득 사 주었다. 어쩌다 낀 나는 정말 고마워서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밤늦은 시간이라 다비토가 옮긴 호스텔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이별!

다비토는 이십 대 초반. 조셀린과 첸은 이십 대 중후반. 나는 이모님! 여행지가 아니고서야 참 어울리기 힘든 조합이었다. 대만의 친절과 야시장의 맛을 알려준 조셀린과 첸에게 무한한 감사. 그리고 멋진 만남을 주선한 다비토에게 또 감사합니다.


P.S. 조셀린은 일본 여행 중에 나에게 선물을 보내주었다. 별 모양 모래가 들어 있는 열쇠고리와 손글씨 엽서. 조셀린이 한국에 놀러 오면 잘해 줄 텐데... 지금은 뉴질랜드에 있으니 선물이라도 보내야겠다.


호스텔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꼬마
호스텔 아침 식사

옮긴 호스텔이 더 좋았다. 일단 지상 4층이라 해가 짱! 라운지와 화장실도 좋았고. 무료 커피와 밀크티에 정말 감동했다. 이 맛있는 커피와 티를 사 가리라. 대만은 부록 같아서 편안함 하나로 충분했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았다. 깨끗했다. 무엇보다도 맛있고 친절했다.

호스텔 아침 식사가 맛있는 게 불만! 거리에 맛있는 게 너무 많아.


예류 - 지우펀

예류
예류곶

예류를 향해 느지막이 출발했다. 날씨가 좋고 기분도 좋았다. 오늘은 무슨 일이 기다릴까?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의 생쥐 아모스처럼 마음이 부풀었다.


아모스는 항해가 너무도 즐거웠어. 날씨도 근사했고. 
아모스는 밤낮으로 산더미 같은 파도에 실려서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오르내렸고,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풀어 있었어. 

- 윌리엄 스타이그 <아모스와 보리스>

지우펀 홍등 골목
초코 회호리 강아지

해가 지고 있는 지우펀 하늘 아래 바닷가 불빛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 하야오 감독은 이 바닷가 마을에서 강을 떠올렸을까? 이름을 기억해 내는 하쿠. 그 눈이 얼마나 예쁘던지. 우리 집 수고양이 이름이 하쿠인 이유다. 16살 된 할배 하쿠는 지금도 눈이 예쁘다.

지우펀에서 버스를 탔다. 어둠 속을 달리는 침침한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하염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사랑, 일, 앞으로 남은 인생. 그리고 여행. 어쩌면 쓸모없고 그렇지만 늘 떠오르는 생각들. 대답 없는 물음. '지금도 실수투성이인데 그때는 참 더 어리고 서툴렀구나.' 이런 후회도 하고.


스펀- 허우통

스펀
기원등은 못날리고 그림만

스펀 역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철도 옆으로 기념품 가게과 먹거리들이 이어졌다. 기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철로로 내려와 하늘에 등을 띄웠다. 두 사람 이상이 마주 들어야 할 만큼 꽤 컸다. 등의 사면에 건강, 돈, 사랑 같은 기원을 적고 불을 붙이면 기원등이 두둥 풍선처럼 떠올랐다. 순식간에 하늘 높이 올라가버렸고. 이미 멀어진 다른 명멸등과 섞여 풍경이 되었다. 내 기원이 아닌데도 약각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남들의 기원을 가벼이 볼 수 없기에. 나도 그들의 기원이 이루어지기를 행운이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게 되었다.


허우통 고양이
고양이 마을

우리 집 고양이 하쿠, 요다, 진저, 진용. 이제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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