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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Jan 29. 2018

투본 강가에서

베트남 하노이 + 호이안

에밀리가 좋은 생각을 떠올려서 그것을 하고 있으면,

샬럿은 한참 뒤에 따라오고 있지요.

에밀리처럼 앞장서서 가다 보면 틀릴 때도 있기 마련이에요.

표지판 하나 없는 길을 혼자 걷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분명히 가끔 실수도 할 거예요.

뒤따라가면서 '이게 틀렸어, 저게 틀렸어.'라고 말하기도 쉬워요.

에밀리가 먼저 길을 갔으니까, 뒷사람은 그 길이 틀린 것을 아는 거예요.

뒷사람은 옳은 길을 알아요.

굳이 어떤 길을 선택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돼요. 

- 루머 고든 <인형의 집>


사파에서 하노이로 

버스가 우여곡절 끝에 오후 6시 40분에 출발했다. 사람들은 모두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까닭은 이러했다. 사파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남은 자리에 라오까이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을 태워야 했다. 라오까이에는 투어를 마친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파에서 출발해 박하 시장과 인근 소수 마을을 돌아보는 투어였다. 빈자리는 몇 개 안 되고 타려는 사람은 너무 많았다. 버스가 한 대 도착하면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미리 예약해 둔 티켓을 보여주고 탈 수 있는 버스인지 확인했다. 

오후 6시쯤 버스에 난 어찌 된 일인지 탈 수 있었다. 두 시간을 기다렸다. 차 막힘 때문인지 4시부터 버스가 거의 오지 않았다. 한 외국인 여자가 자리가 없는데 내리지 않고 차장과 실랑이를 했다. 여자는 떠밀려 버스에서 내렸다가 다시 올라탔고, 관계자가 따라와 어르고 달래기도 했다. 이미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눈만 끔벅끔벅. 그 끈질긴 다툼이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여자가 체념한 듯 관계자의 약속을 다시 한번 받고 내렸다. 버스는 곧바로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호이안 구시가지
웨딩 촬영


그렇게 하노이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2시 15분.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스위스 커플과 나만 남았다. 호안끼엠 호수와 가까운 걸 아는데 택시는 10불을 불렀다. 

"구글 맵 있어요? 이거 편한데요."

커플이 물었다. 내 폰은 먹통.

"우리 숙소까지 길이 비슷하니 걸어가요."

커플이 앞서 걸었고 나는'오케이'를 외치며 따라나섰다. 

호수가 금방 나왔다. 구글 맵 3G의 대단한 위력. 

커플이 자기네 숙소로 가지 않고 서서 상의를 했다. 

"우리가 숙소까지 데려다 줄게요."

거리는 깜깜했고 인적이 없었다. 강도를 만났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예약해 둔 호스텔까지는 제법 걸어야 했다. 또 구글 맵이 가리키던 곳에 호스텔이 없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커플 중 남자가 현지 사람에게 물어보고 돌아왔다. 

호스텔 길 건너편에 도착하자 스위스 커플이 걱정을 했다. 셔터가 내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두드리면 돼요. 정말 고마워요. 정말요."

난 어떻게 이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스위스 커플은 별 인사도 안 받고 쓰윽 사라졌다. 서로 이름도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는데.

여행에서 사기 한 번. 
친절 한 번. 
다시 힘이 났다. 

나는 철창을 두드렸다. 세 번쯤 두드리자 로비에서 자고 있던 직원이 눈을 비비며 문을 열어주었다.  

"욘? 코리아?"

바로 내 이름을 불렀다. 방이 꽉 찼다며 같은 이름의 호스텔 2를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그 시간에 또 깜깜하고 인적 없는 골목들을 가로질렀다. 물론 호스텔 2 직원과 함께.

방은 5층이었다.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들고 비좁은 계단을 올랐다. 모두 잠에 빠져 있었다. 난 최대한 조용히 침대에 누웠다.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왼) 다낭 비빔국수 미꽝     (오른) 호이안 시장 먹거리

다낭 성당 앞 노점에서 국수를 주문하고 앉아 호이안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까오라우라는 호이안 국수를 막 먹기 시작했는데, 노점 주인이 버스가 오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허겁지겁 그릇을 비우고 버스에 올랐다.


호이안 투본 강


버스 안내양 아주머니가 나에게 5만 동을 달라고 했다. 두 배였다. 가격을 되묻자 내 배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나운 아주머니가 버스에서 내리게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난 얌전히 돈을 내고 맨 뒷자리에 가 앉았다. 잠시 후, 중국인 여학생과 안내양 아주머니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여학생은 돈을 제대로 내려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가리키며 얼마를 냈는지 물어보라고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여학생이 벌게진 얼굴로 뒤돌아보았다. 

"5만 동요. 짐 때문이에요. 당신은 짐이 없네요. 그럼 5만 동이 아니죠. 2만 5천 동이 맞아요."

전세가 역전되었다. 안내양 아주머니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여학생은 내 옆자리에 와 앉았다. 우리는 다낭까지 가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에 중국 소설을 읽었어요. 중국 제목을 모르겠어요. 피를 파는 이야기인데..."

"허삼관 매혈기, 위화?"

"맞아요. 한국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어요."

여학생은 놀랐다. 

"LA에서 공부했어요. 거기서 한국 학생들을 많이 보았어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한국인들끼리만 어울리고 영어로는 말하지 않았어요."

여학생은 한국 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자기편을 들어 버스비를 아끼게 해 준 한국 사람도 처음이겠지.

"오늘 같이 여행할래요?"

여학생이 물었다. 나는 "쏘리, 노오." 호스텔을 구해야 했다. 다낭에 머물며 에코 가방을 메고 호이안에 놀러 온 학생과 달리 나에게는 짐이 많았다. 

호이안 정오의 햇빛은 너무나 뜨거웠다. 내가 오토바이 택시를 가리켰다. 

"구시가지까지 걸어서 30분이에요. 세옴은 4만 동 정도예요."

여학생은 버스비를 아끼던 모습과는 달리 8만 동 세옴을 타고 구시가지로 향했다.

정류장과 가까운 풀 하우스 Full house에 갔다. 이름처럼 풀 Full이었다. 숙소 주인이 다정하게 지도를 건네주고 내가 가보려는 숙소에 전화를 걸어주었다. 모두 풀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 호스텔에 한국 사람이 처음 왔다며 좋아했다. 첫 손님을 그냥 보내 아쉬워했다. 아오자이를 입은 남녀의 냉장고 자석을 나에게 선물했다.

네 번째로 체크해 둔 비바란 곳을 찾아 나섰다. 가는 길에 괜찮아 보이는 호스텔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그곳은 컨트리 사이드. 좀 전에 전화로 풀이라던 곳. 빈 방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렇다면 그린 글라스에도 방이 있을지 몰랐다. 전화로 없다 하고 직접 가면 있는 건, 체면 때문인가?


투본 강의 저녁

호이안은 큰 무역항이었지만 지금은 토사로 막혀 다낭에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강가에는 과거의 부를 보여주는 집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었다. 어둠이 내리고 거리에 불이 밝혀지기 시작하면, 눈부시게 아름다워 도리어 슬퍼지는 곳이었다.

투본 강가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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