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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Jun 11. 2018

츠칸러우의 오후

타이완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그 사람들은 그냥 외로운 것뿐이야. 네가 외로움이 뭔지나 알아?"

.    .    .    .    .    .

"너한테는 당연히 있는 게 그 사람들한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어. 

근데 그건 나눠줄 수도 없는 거야. 이 세상이 우리 꿈과는 다른 것처럼 말이야. 

그렇다고 우리는 꿈을 포기할 수도 없어.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쫓아낼 수밖에 없는 거라고." 

- 칭산 <칠월과 안생>


타이베이에서 화련

기차를 타기 전, 폰 충전이 시급했다. 큰 가방을 메고 역을 두 바퀴. 충전할 식당을 못 찾겠다. 대기실 콘센트 옆에 앉아 먹을 요량으로 세븐 일레븐에서 어묵과 검은 달걀을 샀다. 유명한 밀크티도. 그런데 어묵을 사면 우동이 공짜란다. OK. 막상 국물 있는 먹거리까지 사고 나니 앉을 데가 없다. 구석에는 역시 노숙자들이 많아 미안하고... 표를 발권하는 큰 홀에서 콘센트를 찾아보았다. 없다 없어. 충전을 포기하고 입구에 기대어 어묵과 우동, 달걀을 먹었다. 대학생처럼. 주위엔 죄다 학생들.

'난 왜 이리 궁상맞을까?'


화련 루수이


기차를 타러 이동. 앉을자리가 없다. 다리가 아픈데... 의자를 찾아 플랫폼 끝으로 가 화련행 기차를 기다렸다. 졸았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남아 또 졸았다. 10분 전, 이동할까? 아니 아니. 3분 전에 일어났는데, 내가 타야 할 기차가 이미 출발해 지나가고 있었다. 헉, 기차를 놓쳤다. 11번 플랫폼까지 기차가 오지 않았던 것. 너무도 신속히 도착해 조용히 사라지는 기차라니! 

까마득해졌다. 숙소에 너무 늦게 도착할까? 표를 다시 끊어야 하나? 멀리 있는 발권 카운터까지 갔다 와야 하나? 마침 근처에 있던 역무원에게 달려가 흥분해 말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역무원이 괜찮다고 다음 기차를 타란다. 일단 다행이다. 지정석이 아니지만 그냥 앉으며 된단다. 

이번에는 2번 칸 앞에서 확실히 기다렸다. 소리 소문 없이 왔다 가는 기차를. 

50분 전부터 기차를 기다렸고. 다음 기차를 40분 더 기다려야 했고. 3시간 걸리는 완행 기차였고. 그러니 세 시간 추가. 완행이 지루할까 봐 미리 예매했는데... 기차를 놓치고 나니 내가 세계에서 가장 한심한 것이다. 왜 여행을 하는 것일까? 왜 이 고생을 하는 것일까? 무슨 보람으로 사는 것일까? 우울해졌다. 한숨이 푹푹 쉬어졌다.


조금 지나자 진정이 되었다. 인간은 역시 불행에서도 위안을 찾는 낙천적인 동물이 맞다. 기차에 올라 30분쯤 졸다가 눈을 떴다. 기다릴 때 많이 졸았구나. <토니와 수잔>을 읽었다. 3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금방 갔다. 


이 책이 그녀의 의자 주위를 거미줄처럼 엮어 놨다.

거기서 나가려면 구멍을 내야 한다. 

그러면 거미줄은 망가질 것이고, 구멍은 커질 것이고, 

그녀가 돌아올 때 거미줄은 사라질 것이다. 

- 오스틴 라이트 <토니와 수잔>


화련 샤카당

화련

기차역에 내려 호스텔을 찾는데 배터리가 바닥이라 조마조마. 역에서 숙소가 가까운 건 알겠는데... 구글맵을 잠깐 켜고 확인. 다행히 빨리 찾았다.

드디어 화련이구나. 한 달 전에 건물이 무너지고 일주일 전까지 지진이 있어서 망설였던 곳. 스텝에게 물었더니 걱정 말란다. 오히려 궁금해한다. 

"한국에는 지진이 없어요?"

글쎄...


샤카당 트레일에 이어 엔쯔커우. 그다음 루수이에 갔다. 버스가 13분 늦게 와 머물 수 있는 시간은 40분. 버스에서 내렸는데 루수이 트레일을 못 찾겠다. 휴게소만 보였다. 주위를 헤매다 물어보니 길을 건너 산을 가로질러 가야 한단다. 서둘러 산에 올랐다. 터널을 지나야 하는데 안이 너무 깜깜했다. 돌아갈까? 마침 어둠 속에서 손을 잡고 나오는 커플. 나도 용기를 내었다. 그들이 갔다면 나도 갈 수 있어. 벽을 더듬어 겨우 빠져나왔다. 산길을 조금 내려가니 비탈에 트레일이 보였다. 벼랑 옆 길. 위험해 보였다. 가파른 데다가 땅이 물에 젖어 있었다. 미끄러질까 봐 걸음의 폭을 줄여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트레일에 서니 계곡 건너편에 휴게소가 보였다. 휴게소에서 보이던 전망 좋던 절벽에 내가 올라 있구나. 버스 때문에 서둘러 돌아왔다.

(왼) 옌쯔커우     (오른) 치싱탄

20분 넘게 버스가 안 온다. 맞은편에 한 대가 섰다. 엇, 같은 호스텔에 묵었던 커플이 내린다. 둘은 나보다 한 박자 느리게 트레일에 도착했는데. 종점부터 찍고 내려온 것인가? 일본 청년 두 명이 길을 따라 내려온다. 나를 지나쳐 지나갔고. 이상하다. 트레일 사이의 그 긴 길을 걸은 것일까? 다음 역까지 버스로 2분이니 나도 그냥 걷자. 청년들이 내려간 길을 따라 걸었다. 5분쯤 내리막을 걷다가 마침 깨달았다.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왜 안 오는 것인지. 맞은편 버스는 왜 빨리 온 것인지. 왜 커플이 나보다 빨라진 것인지. 구글맵을 보자 종점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내가 반대편에서 버스를 기다렸던 것. 

다시 되돌아 갔다. 한 시간 더 기다릴 것인가? 구글맵으로 1.8Km. 걷자. 걷다가 기다리던 버스를 탈 수 있을지도 몰라. 

구불구불 오르막 길을 씩씩하게 걸었다. 버스와 승용차가 씽씽 지나갔다. 태양은 몹시 따가웠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주춤. 터널과 마주했다. 물웅덩이가 많아 차도로 빙 돌아 걸어야 했다. 터널 안은 점점 더 깜깜해졌다. 햇볕과 바람을 피할 수 있었지만, 어두워 두려웠다. 게다가 너무 길었다. 소리가 몹시 울렸고.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 때문에 겁이 나 돌아보면 오토바이나 작은 버스가 지나가곤 했다. 인도가 없어 피할 길이 없었다. 오르막이라 땀을 뻘뻘 흘렸다. 

타려던 버스가 나를 지나쳐갔다. 버스의 뒤꽁무니를 보며, '곧 터널을 지나리라. 걷다 보면 지나리라.' 주문을 외웠다. 드디어 터널 끝, 빛이 가득했다. 밖으로 나오자 절벽 위 사원과 다리가 보였다. 멀리 휴게소가 있었고. 휴게소에 도착하자 나를 지나쳤던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2분 후 출발. 숨을 헐떡이며 땀을 뻘뻘 흘리며 버스에 올랐다. 아, 종점을 못 봐 아쉬울까? 고민하며 떠났다.

난 너무나 바보 같이! 난 버스를 놓쳤고 대신 그 길을 걸어 올랐고. 힘들었다. 휴~우.


(왼) 참치 딴빈     (오른) 아채 만두와 콩국물

아침으로 딴빈을 먹으러 갔다. 주문을 하려니 메뉴판이 대만어. 폰에 저장해 놓은 번역 메뉴판을 가리켰다. 채소 딴빈을 시켰는데 맛있다. 참치 딴빈을 추가. 더 맛있다. 

날씨가 춥고 비가 와서 바로 타이둥으로 가는 완행 기차를 탔다.


타이동

타이동 철화촌

기차역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동네 할아버지가 슬리퍼를 끌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서 나랑은 손짓 발짓. 잠시 후, 할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커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버스는 두 시간 후에나 온다면서 같이 갈 거냐고. 버스비 25 TWD 대신 100 TWD을 내고 시내로 이동했다. 커플 중 남자가 한국에 잠시 있었다고. 추워, 비빔밥을 기억했다. 둘이 구글 맵을 켜고 할아버지를 안내해 호스텔 앞까지 편하게 도착했다. 친절한 둘이 없었으면 할아버지가 무서워 차에 타기 힘들었을 듯. 

호스텔에 너무 빨리 도착. 다행히 12시 체크인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침대가 여섯 개 있는 3층 방에 짐을 풀었다. 스텝이 혼자 쓸 거 같다고 귀띔해 주었다. 밖은 바람이 씽씽 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금 돌아다니다 포기. 숙소로 돌아와 빈둥거렸다. 다시 나가려니 바람이 더 분다. 춥다. 나가고 싶지 않다. 그래도 야시장에 도전. 씻는 걸 미루고 나갔더니 야시장이 아직이었다. 까르프에 가서 꽁치 구이와 어묵을 사와 저녁으로 먹었다. 꽁치가 맛있었다. 옆에서는 숙소 스텝들이 요리 해 먹고 있었다. 대만 사람들은 요리를 안 한다 했는데... 간단하게 해 먹는 듯. 다음 날 물어보니 요리한 게 아니라고 한다. 사 와서 조금 바꾸어 먹는다고.


동해안 투어

비바람 속 싼셴타이

예보와는 다르게 비가 왔다. 어찌나 바람이 씽씽 부는지. 가진 옷을 다 껴입고 동해안 투어 버스를 타러 갔다. 어제 할아버지 택시를 탔던 커플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둘은 내일 동해안 투어를 한다고, 오늘은 다른 투어라고 한다. 무슨 투어일까? 알 길이 없다. 

비 때문에 사오예류에서 내릴 수 없었다. 종점 싼센타이까지 가자. 그 사이 비가 잦아질 수 있으니. 그러나 비는 더 내리고 바람이 더 세졌다. 싼센타이. 바다 위를 가로질러 작은 섬으로 가는 다리. 건널 수 없었다. 심지어 바닷가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다. 비바람이 너무나 불었으니까. 바지도 젖고 신발도 젖어 춥고 시리고.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사진 찍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다리 위로 사람들이 보였다. 찔린다. 나만 몸을 사리나? 멀리서 다리만 보고 가는 게 허무하다. 이렇게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사진 보는 게 낫지. 불편한 마음을 안고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두란탕창과 근처 거리의 집들

다음은 두란 설탕 공장. 길어봐야 20분이면 둘러보는 곳. 그러나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 1시간 30분 머물러야 했다. 공장 안 작은 가게들은 닫혀 있었고. 열려 있는 곳은 야외라 추웠다. 

두란 거리를 걸었다. 끝에서 끝까지 5분. 왕복 10분. 서핑하러 올까 했던 곳이라 유심히 둘러보았다. 곳곳에 '방 가능' 문구가 붙어 있었다. 작고 예쁜 커피숍이 숙소인 경우가 많았고. 장기 체류하는 서양인도 몇몇 보였다. 시간을 때우느라 한번 더 왕복했다.

왜 이렇게 옛날 느낌일까? 생각해보니 타일 건물이다. 우리나라에서 80-90년대 한참 유행했던 외관. 지금 보니 스타일이 굉장히 올드했다. 저 멀리 전광판이 번쩍번쩍. 아! 더운 여름날 밤에 화려해지리라.


샤오예류

버스가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같이 내렸던 여자 둘도 보이지 않았고. 버스를 타고 보니 둘은 다음 역에서 탄다. 아, 1Km 걸었으면 다음 역이었구나. 구경할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인포에서 추천한 Jialuian. 여기는? 정보가 없었다. 내리고 보니 해양 공원. 다 보는데 5분. 그런데 다음 버스까지 두 시간 기다려야 했다. 좀 전의 경험을 되살려 구글로 검색해 보니 걸어서 15분. 걸어 가자. 같이 내렸던 둘이 이미 앞서 걷고 있었다. 

동해안 투어의 하이라이트 샤오예류. 입장료가 없었다. 신난다. 걸림돌은 추위와 바람뿐. 다행히 설탕 공장 때부터 비가 그쳤다. 바람도 잠잠해졌고. 한 시간쯤 지나자 바람이 세진다. 해가 없어지고 추워진다. 버스 시간이 40분이나 남았는데... 바람을 피해 가게들 사이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점점 바람이 거세지더니 못 견딜 정도로 추워졌다. 인포라면? 실내라 추위를 피할 수 있으리라. 인포를 찾아 나섰다. 역시 따뜻했다. 앉을자리가 없었지만. 미리 인포에서 기다릴 걸. 몸을 좀 녹이고 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여자 둘이 인사를 한다. 계속 마주쳤던 둘이었다. 허름한 파카를 입고 비닐봉지에 물건을 넣고 다니며 나에게 대만어로 말을 건넸던 둘. 그런데 한 명이 영어를 잘 한다. 몇 마디 나누는데 버스가 바로 왔다. 대만 사람들은 참 따뜻하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람이 씽씽 불고 너무 춥다. 호스텔로 가는 길이 두렵다. 달려갔다. 뜨거운 물에 샤워하리라.


가오슝

불광산사

불교에 관심 없는 난 그저 그럼.


가오슝 용호탑
관우상

렌즈탄. 재미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다. 

구글 맵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확인해야 하는데 폰 배터리가 꺼지기 직전. 패밀리 마트에 충전을 부탁했다. 역시 친절하다. 그냥 충전을 해주었다. 검색하더니 어설픈 한국말로 인사했다. 또 물까지 한 병 선물해주고. 고맙습니다. 


타이난

타이난 츠칸러우


츠칸러우가 제일 좋았다. 자전거를 타고 타이난을 둘러보아서 좋았고. 무릎이 좀 아팠지만. 오토바이가 많아 복잡하고 도시가 큰 편이었다. 

나이 탓인지. 오후 5시만 되면 피곤해서 돌아다니기 힘들다. 이런 배낭여행도 몇 년 안 남았구나 생각해 본다. 


오후 6시, 야시장을 기다렸다. 호스텔에서 자전거로 10분. 생각보다 큰 야시장이 열렸다. 다양한 상품을 팔고. 현지인들의 야시장이었다. 굴전, 오징어 튀김, 꼬마 만두를 주문했다. 내가 영어로 주문하면 눈이 동그래져 쳐다보았다. 또 처음 보는 간식, 해시 브라운 달걀말이를 포장했다. 명태 알과 옥수수, 치즈, 김, 햄을 가득 얹어 주었다. 맥주 한 캔과 먹었더니 요 해시 브라운만으로 배가 볼록해졌다. 

새벽에 깨어 준비. 일찍 자니까. 타이중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아 어제 남았던 야식을 아침으로 마저 먹었다. 


타이중

타이중 동해대
국립 타이완 미술관 가는 길에 만난 꿈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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