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사가다 / 14년 전 여행
사가다에서 본톡으로 가는 7시 지프니를 놓칠까 봐
조급한 마음으로 숙소에서 나왔다.
등에 10킬로 앞에 3킬로 배낭을 메고 오르막 길을 걸으려니
빨리 갈래야 빨리 갈 수가 없다.
게다가 어제 동굴 투어로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있으니...
숙소에서 정류장까지 이렇게 멀게 느껴질 줄이야. (5분 거리)
몇 걸음 걷고는 숨을 헉헉 몰아 쉬기 시작했다.
지프니는 나까지 겨우 4명만 태우고 출발.
오호~ 지프니가 이 정도만 태우고도 출발하다니 시간을 지키려고 하는구나.
조금 가다 선다. 중간에 타는 사람이다. 짐이 좀 있다.
조금 가다가 또 선다.
이번엔 감이고 야채고 뾰족한 낡은 우산까지 짐이 큰 대야 4개다.
지프니 안이 순식간에 꽉 찼다.
가다가 또 선다.
이번엔 짐이 더 많은 할머니다.
지프니 위에 짐을 올린다.
본톡 장에 과일과 채소를 팔러 가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다.
이렇게 짐과 사람을 더 태우고 지프니는 포장 안된 길을 덜컹거리며 내려간다.
지프니 아저씨는 피할 게 많다.
우선 동네 강아지들을 피해야 한다.
개들은 지프니라고 봐주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길에 똥도 얼마나 많이 싸는지 ㅡㅡ;;;
벼랑으로 한쪽이 무너진 도로를 조심히 건너야 하고
위에서 쏟아져 내린 큰 바위들을 피해야 한다. 아찔하다.
물이 고여 있거나 푹 파인 길마다 큰 돌들이 있어 속도를 줄여야 한다.
다행히 개똥은 피하지 않는다 ㅎㅎㅎ
중간에 탄 할머니가 감을 사람들에게 먹으라며 나눠준다.
운전사 아저씨도 여러 개 챙겨주고.
지프니에 탄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모두 감을 맛있게 까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나에게도 건네준다.
난 덜컹거리는 지프니를 앞으로 두 시간 더 타야 해서 노우.
그렇지만 살라맛!
할머니가 걸친 빨간 카디건은 팔꿈치가 뜯어져서
옷핀 하나로 벌어진 틈을 겨우 고정하고 있다.
옆구리엔 큰 구멍이 있고 아랫부분은 다 해져서 올이 다 나갔다.
옷 모양이 다 없어진 카디건을 입은 할머니가 인심 좋게 감을 나눠주고 있다.
자연스러운 그들의 생활을 찍고 싶어진다.
그러나 너무나 자연스러워 내가 사진 찍는 게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볼거리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
사진 찍어도 될까요?
감 할머니는 하랜다. 찍으랜다.
저건 뭐예요?
지프니 입구 쪽에 앉은 아주머니가 녹색 바구니를 들고 있다.
*** 살라조??? 잘 못 알아듣겠다.
과일이에요?
족색 덩어리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는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답한다.
베지터블~
하하하 지프니 안이 웃음으로 가득해진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