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사가다 / 14년 전 여행
보콩 가는 좁은 내리막 길을 떡하니 막아서서 풀을 뜯고 있는 소.
길은 가파른 경사인데 비 온 뒤라 미끄럽고
저렇게 소 님~이 계시니 흠... 보콩 폭포는 내일로.
다음 날 다행히 비켜주셨다.
보콩 폭포에 가려고 시도했다가 쓰러질 뻔했다는 걸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논길을 가로질러 가는 길은 풀이 무성해 도저히 건너갈 수 없었다.
저 멀리 폭포가 보이는 데 반쯤까지 용기를 내어 갔다가
걸개풀만 옷에 잔뜩 묻힌 채 되돌아왔다.
반바지였던 터라 여기저기 풀에 베어서 피가.
논길까지 가느라 걸어 내려왔던 수많은 계단을 다시 오르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쉬었다가 다시 걷는데 핑핑핑~ 어지러웠다.
올라가기를 멈추고 계단에 주저 않았다.
(어제 비로) 젖은 계단에 앉아 신발에 잔뜩 묻은 흙을 터는데
멀리 산 중턱에서 개가 짖기 시작한다.
신발을 바닥에 때려 '탕탕' 터는 소리가 기분 나쁜가 보다.
아랑곳 않고 계속 '탕탕'
개가 산중턱에서 내려와 짖고 있다.
큰 개인줄 알았는데 청소년쯤 되는 아이다.
여기 개들은 직업의식이 투철하다.
도시에 비해 건강상태도 좋고 깨끗하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니 개가 짖으며 계속 쫓아온다.
내가 멀어지는 걸 보더니 내가 앉았던 자리에 가서 이리저리 살핀다.
'탕탕' 소리가 뭐였는지 어지간히 궁금했나 보다.
코를 킁킁, 그래봐야 진흙냄새지.
내가 좀 더 멀어지니 다시 따라오며 짖는다.
그래, 이 산이 네 산이냐? 산까지 지키게.
그러곤 보콩에 가려면 가로질러야 하는 마을에 들어서니 그 마을 개들도 난리 났다.
오지 말라고 짖었다가 지나가면 빨리가라고 짖는다.
이 동네 개들은 오지랖이 어찌나 넓은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어제 동네 밖에서 봤던 꼬리 짧은 개가 오늘은 내 숙소 앞에 있고
아침에 숙소 근처에서 놀던 개가 동네 밖에서 달리는 지프니를 따라가고 있다.
아님 개들이 닮아서 그래 보이는 건가?
인척관계인걸 나만 모르고 있는 건가?
산에서 나를 쫓아온 개도 어디서 봤던 개인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