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가 사라졌다.

네팔 ABC 트레킹

by 소묘
한 마리는 살려두자.
그래야 더 외로워질 테니까.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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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고 식당에 앉아 어둠이 산 위로 내리고 안개가 피어나는 걸 지켜보았다.

이제 자야 할 시간.

혼자 방에 들어가 자는 게 몹시 두려웠다.

어둠이. 벌레가. 앞으로 남은 트레킹 7일이 두려웠다.

돌아갈 포카라의 허름한 숙소가 두려웠다.

인도 기차가 두렵고 바라나시가 두렵고 미리 예약한 인도 숙소들이 두려웠다.

두 달은 너무 길었나?

아직 한 달이 남았는데 왜 이렇게 많이 남은 것처럼 느껴지지?


침대만 달랑 있는 히말라야 뷰 롯지의 내방 10호에 들어서니

커다란 거미 한 마리가 창 틀에 붙어있었다.

어제 책으로 잡았던 꿈틀이들은 숨을 줄 모르고 벽에 떳떳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거미는 됐고. 저 꿈틀이들을 잡을까?

에이, 이제 익숙해져야 해. 포기해 버렸다.

하루 만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곤 적막 속에서 음악을 틀었다.

음악이 방을 가득 채우니 한결 포근해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외로웠다. 앞으로 남은 고독할 인생이 두려웠다.

더 나쁠 수 있는 불운에 그나마 위안을 얻으며, 힘을 내어보았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러 가는데 북극성이 보였다.

별이 밝았다.

얼음물에 씻어 손이 아직 얼얼한데 그사이 해가 떠올라 있었다.

히말라야 설산이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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