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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Sep 15. 2022

빨래가 없어졌다.

네팔 포카라

어떤 헤어짐은 긴 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
<씬짜오 씬짜오> 최은영


양말 한 짝과 아끼는 원피스가 없었을 때,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통돌이 세탁기가 진열된 빨래 가게로 따지러 갔다. 

젊은 아들까지 나서서 자기 어머니를 변호했다.  

"어머니가 빨래를 왜 훔치겠어요?"

물론 훔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어수룩하게 다른 사람이 맡긴 빨래에 딸려 보냈다고 생각했지. 

오랜 실랑이 끝에 빨래가 널린 마당에 들어가 보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물론 오케이. 

바로 그곳, 내 원피스가 어둠 속 빨랫줄에 걸려있었다. 

양말 한 짝은 찾지 못했지만. 

아들은 나에게 미안하다며 자기네가 파는 양말 두 켤레를 주었다. 

나는 애써 화를 접는 척 오케이. 


나는 반성합니다. 

그 양말을 받아서는 절대로 안 되었던 것이다. 

겨우 1달러 정도를 받고 1킬로의 빨래를 해주는 곳이었는데. 

그 가게는 양말 두 켤레를 주느라 손해를 보았으니까. 

죄송합니다.  

그 양말을 신을 때마다 부끄럽다.

빌린 침낭의 가격이 더 나왔다.

영수증을 보니 이틀을 추가했다.

이건 처음 계약과 달랐다.

"당신은 나빠요. 아기 엄마가 9일이라고 썼잖아요?

오늘 너무 속상해요. 

산에서 선글라스를 잃었고, 헤맸고, 차를 놓쳤고... 또... 또..." 

가게 주인인 남편이 9일 치만 내란다.

계산 후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로 나에게 물었다.

"아 유 해피? 아 유 해피? 난 당신이 해피했으면 바래." 


포카라 호수 곁을 걸었다. 

호수 너머로 산들 또 산들. 

히말라야의 우람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게 놀라웠다.

폐와 호수를 가르는 배들. 

날아오르는 까마귀들. 

서서히 저물어가는 해. 

하늘이 분홍으로 물들고 우뚝 솟은 산의 빗면이 반짝 불타올랐다.

설산을 그리지 못한 게 아쉬웠다. 

좀 더 느긋하게 걷지 못한 게 아쉬웠다.

천천히 경치를 감상하고 

좋은 풍경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게 아쉬웠다.


골짜기로 붉은 태양이 솟아올랐다. 

별이 하나 반짝. 아직 하늘은 어두웠다. 

구름 사이에서 힘을 써보다가 해는 다시 물러나곤 했다. 

새가 새벽을 알리는 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별은 사라지고 하늘이 차츰 파래졌다. 

서서히 살구빛이 넓어지고 어둠이 물러났다. 

손으로 만져질 듯한 오돌토돌한 산의 비탈과 

구름의 테두리도 아주 선명한 주홍빛으로 빛났다. 

까마귀가 울었다. 

떠오르는 해가 이렇게 눈부시고 찬란하다니. 

이렇게 가슴을 뛰게 하다니. 

태양은 이제 멀리 산 너머에 깔린 구름을 넘어 우렁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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