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을 정독해 보았다.
상처로 얼룩져 있다고만 믿어왔던 내 기억 속 유년 시절과는 달리, 오래된 일기장 속의 나는 새롭게 태어난 듯 반짝이고 있었다.
언니와 사소하게 다투고 금세 화해하던 일부터,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계곡이나 공원으로 놀러 다니던 긴 여름의 풀냄새, 큰외삼촌 댁 마당에서 친척들과 공을 던지고 받으며 깔깔거리던 소리들까지.
기억 속에서는 늘 어두운 그림자가 먼저 떠올랐는데 실제의 나는 꽤나 환하고,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아이였던 것이다.
물론 스무 개 중 한 장 정도는 혼나고 반성문처럼 휘갈겨 쓴 문장도 있었지만.
그조차도 지금 돌아보면 귀엽지 않을 수 없었다.
어버이날이면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쓰고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노래 한 곡을 불러드렸던 아이.
그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고,
그 따뜻함으로 세계를 바라보던 시절이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서며 나는 더 이상 그런 일기를 쓰지 않았다.
대신 빨간색 표지의 노트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는 학교 일진들의 눈치를 보느라 하루가 축 처져버린 이야기,
학원을 빼먹고 들켰을 때의 떨리는 심장 소리,
부모님과의 갈등 끝에 반나절 집을 뛰쳐나왔던 온갖 찌질하고 어두운 역사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성인이 된 어느 날,
나는 그 빨간 노트들을 전부 불태워 없애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