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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비얀코 Nov 04. 2020

신의 추천서

어머니회에서 만난 리더들

얼마 전 끝난 ‘거짓말의 거짓말’이라는 드라마를 한 편도 놓치지 않고 봤다. 방법이 옳던 옳지 않던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어머니란 사람들의 사랑’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스스로에게 물을 때마다, 돌아온 답은 나의 선택도 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작년 초, 중학교에 들어간 큰 아이가 특유의 재치와 익살로 학급회장에 선출되었다. 학급회장 어머니들이 학교 어머니회에 가입해야 한다고 해서, 사전 모임에 참석했다가, 회장님으로부터 학부모회 부회장으로 활동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동안 직장생활 하느라 바빠, 아이를 위해 변변한 학교 활동 하나 해주지 못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새 각오를 다지는 아들을 위해 엄마가 학교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았다.


학부모 총회가 열리던 날, 800여 명의 전교생 어머니 앞에 일어나 인사를 는 순간, 나는 그 ‘단순한’ 마음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저 엄마 누구지, 누군데 왜 나서지?’ 하는 엄마들의 눈빛이 감지되는 순간, 일할 때 회사 회장님 앞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던 중압감을 느꼈다. 못한다고 할까? 그러나 학교 시작부터 ‘부회장 한다고 했다가 그만둔 엄마의 아들’이라는 불명예를 아이에게 안겨줄 수는 없었다.


워킹맘으로 살 때, 학교 학부모회는 ‘아이들에게 열심을 기울이는 극성 부모들의 모임’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니, 그 책임감과 일의 분량이 장난이 아니었다.


학부모들을 대표해, 학교 운영 전반에 있어, 엄마들과 학교 사이의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해야 하는 기본 업무 외, 학교를 도와 1학기 진로박람회, 2학기 체육대회의 대형 행사를 치러야 했다. 꽃꽂이, 청소봉사 등 학부모 동아리들도 운영했고, 학교 앞 환경문제로 상인들과 이슈가 있을 때는, 주민센터와 상인회, 구청에도 찾아가 회의를 했다.


그야말로 웬만한 대기업 중간간부 이상의 업무강도였던 것 같다.


일보다 더 힘들었던 건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기업에선 조직 내 서열이 명확하고, 기업 간 이해관계도 비교적 분명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벌어지는 일들이 그나마 예측 가능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훨씬 더 다양한 성향을 가진 학부모들과 그 아이들의 관계가 얽혀 있어, 늘 예기치 못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여기가 진짜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학교일에 경험이 많으신 어머니들이 매우 현명하게 상황에 대처하시는 걸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기업에서 그 정도의 성실함과 책임감, 리더십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특 A급 인재로 특별 승진 대상이다. 어떤 일이라도 그분들과 함께한다면 틀림없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머님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작은 당연히 ‘아이’였을 거다. 아이가 결부되어 있지 않다면, 그렇게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다. 엄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돈도 한 푼 받지 않고, 칭찬보다는 욕을 많이 먹어가며 묵묵히 일하던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애초에 ‘경력 단절’이란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일 거란 생각을 한다. 엄마로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일하는 그 순간, 그 순간이 씨앗이 되어, 훗날 세상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멋진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엄마로서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큰 성공을 이룬 '엄마 벤처'들도 많이 늘고 있는 듯하다. '엄마를 위한 아기띠'로 글로벌 육아용품 브랜드 '코니 바이에린'을 일궈낸 임이랑 대표의 이야기는 ‘모성이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변화된 아주 좋은 사례이다.


임 대표의 영상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중 2 아들 말 잘 듣게 만들어 주는 심리 상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만 있다면 글로벌 대박이 아닐까?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그들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이 시대 가장 훌륭한 리더들이다. 세상이 뭐라고 불러도, 신은 이미 그녀들을 위해 가장 훌륭한 사업계획서와 추천서를 준비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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