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패션잡지사에서 일을 한 나의 옷장은 어쩔수없이 버블이 한껏 끼어 있을 수 밖에 없다. 패션감각으로 승부하는 에디터는 아니었지만, 패션컨텐트가 주를 이루는 잡지업계에서 오랫동안 보다 보니 스타일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중국보그에서 3년간 일할 때는, 중국의 ‘아나윈투어’로 불리던 보그차이나 편집장 안젤리카 청(Angelica Cheung) 등 중국의 쟁쟁한 패션아이콘들과 일을 해야 했기에, 외모나 옷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잡지사 CEO로 일하면서, 브랜드의 CEO들과 매일 만나고 그들의 화려한 행사들에 참석을 해야 했다. 그 때는 나의 ‘안목’을 통해 회사나 매체들을 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외모나 패션아이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브랜드들의 광고 매출로 사업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서, 브랜드 임원들과 만날 때는, 그 브랜드 아이템을 들어주는 게 하나의 예의로 느껴지기도 했다. 경쟁사 제품을 들고 브랜드 대표를 만나는 것은, 그 만남에 대한 성의가 없다는 뜻의 반증이기도 했기에, 늘 그날 스케줄을 생각하며 옷과 가방을 챙겨야 했다.
그런데 모든 브랜드의 백과 옷을 사려면 월급을 다 쏟아 부어도 모자란데다, 거의 매일을 다른 브랜드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나로서는 효용이 너무 떨어졌다.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흔하지 않고, 퀄리티가 좋아 나의 안목이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패션 도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엄마옷’과 ‘천연석 주얼리’였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를 내조하기위해 부부동반 모임에 자주 나가시던 엄마는 외모에 대해 신경을 쓰셨다. 예전에는 왠만한 브랜드들도 좋은 옷감을 썼기 때문에, 옷장에 있는 엄마옷들을 가져다가 내 몸에 맞게 수선해 입으면, '꽤 무게가 느껴지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훌륭한 룩을 연출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엄마의 옷들을 입으면, 엄마의 '따뜻함'과 '무한응원'을 함께 입는 듯해서,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거나 중요한 일이 있으면 으레 엄마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주얼리 브랜드 행사에 가거나 대표님들과 만날 때는 주얼리도 한 두개는 걸쳐줘야 했다. 결혼 때 혼수로 받았던 주얼리는, 시댁 어른이 골라 주신 신부용 디자인들이라 나의 스타일과 이미지에 맞지 않았다.
우연히 시청앞 지하도를 걸어가다 조그마한 가게 쇼윈도에 있는 하늘색 반지가 눈에 띄어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이후로, 나의 패션역사가 바뀌게 되었다.
세공을 하는 남편과 함께 주얼리 브랜드를 운영하는 디자이너의 샵이었는데, 쇼케이스 아이템들은 큰 다이아몬드나 금이 아닌데도, 아름다운 색과 빛으로 눈을 끌어당겼다. 디자이너는 아이템 하나하나에 대해 마치 자식 다루듯 세심하게 그 원석과 세공법에 대해 설명을 했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 알이 작은 귀걸이에 대해 물어보는데 이 디자이너가 단번에 아니라는 표정을 짓더니 “고객님께는 그 디자인은 추천해드리고 싶지 않네요. 고객님을 돋보이게 하는 아이템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더니 피부색, 체격, 얼굴형, 심지어 코의 높이까지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사람마다 어울리는 주얼리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호 재미있는데!
그리고는 대화를 통해 하나씩 나에게 어울리는 아이템을 추천해주기 시작했다. 감각 있는 데일리주얼리를 원하는 나에게 브라운색의 영롱한 빛을 가진 스모키쿼츠 반지를 추천해줬다. 다음날 반지를 끼고 출근을 했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반지에 걸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팔목이 두꺼워 팔찌는 엄두도 내지 않던 나에게, 민트 빛 크리스탈팔찌와,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볼드한 귀걸이를 추천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낯 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치 나 조차도 모르고 살던 내 안의 빛을 본 느낌이었다. 고민고민한 끝에 사서 샵에서부터 하고 거리를 나가니 ‘저 여자 한 거, 저거 뭐지?’ 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남들의 시선이 고정되는 걸 즐기는 재미, 10만원짜리로 천만원짜리 다이아몬드 팔찌도 주지 못하는 감동을 누리는 재미,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게다가 천연석은 오랜 기간 세월을 이겨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에 색과 빛도 다양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다.
체격이 큰 탓에 옷으로 색깔과 재미를 누리기엔 한계를 지닌 나에게, 그렇게 천연석의 주얼리는 나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붓이요 물감이 되었다.
일을 그만두고 월급이 없어지니 생활비를 줄여야 했다. 더 이상 옷가게, 주얼리샵은 가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을 하고 또 해도 또 다시 옷가게, 주얼리샵을 기웃거리는 나를 발견하면, 잠들었다 주막앞에서 말의 머리를 잘랐다는 김유신 장군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는 것이 오피스 룩과 엄마의 룩은 달랐다. 옷장에 한가득인 재킷과 포멀한코트들은 학부모 모임에선 오버였다. 언제 어디서나 ‘과유불급(過猶不及)’, 오버는 안 하니 만 못하다. 옷장에 한가득인 파워재킷과 정장용 바지는 무용지물이었다. 대신 편안한 티셔츠와 가벼운 패팅이 필요했다.
터져 나가는 옷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마음을 먹고 아무리 ‘신박한 정리’를 하려고 해도, 왠지 그 자켓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네이비 재킷을 사곤 했다. 그리고는 다시 자괴감에 우울해졌다. 옷장 안 옷들과 서랍장속 주얼리들, 저 아이들은 내 인생에 무슨 가능성을 의미할까? 그저 단절해야 하는 과거일까? 내가 의지박약이라 끊어 내질 못하는 건가? 스스로에게, 또 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럴 때마다 신약성경 로마서 8장 28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는 구절에 의지하고 싶어 졌다. 언젠가는 답을 알 수 있겠지. 어느 날 모든 걸 정리하여 플리마켓에 가져다 놓든 아니면 다시 출근하는 일이 생기든.
오랜만에 만난 주얼리 디자이너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 고민중이라는 나에게, 이제 그만큼 ‘혼자서’ 누리셨으니 스스로의 주얼리브랜드를 런칭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적이 없는데…
그러고 보니, 천연석의 주얼리들을 통해 내가 얻은 재미와 희열(?)을 다른 사람에게도 경험하게 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일 것 같다. 인생 2막을 시작하는데 있어, 재미있는 일, 좋아하는 일, 잘 하는 일의 삼박자가 갖추어질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테니까 말이다.
점심시간 인산인해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을 보면 무채색 일색이다. 튀는 걸 싫어하는 우리나라의 문화덕에 가장 쉽게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옷이나 주얼리에 있어서 조차 색에 인색한 것 같아 안타깝다. 주얼리를 단순히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나 보석의 금전적 가치만으로 평가하는 우리나라 전반적 인식이 바뀌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과 색을 드러낼 수 있는 아이템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래서 거리가 다양한 컬러와 빛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행복할 것 같다. 무엇보다 '그들도 모르는 그들안의 빛'을 찾아 줄 수만 있다면 그건 어떤 일보다 가치 있을 것 같다. 가슴이 뛴다!
생각이 바뀌니, 골치거리였던 서랍 속 내 이쁜 주얼리들이 귀하디 귀하다. 삼국시대 김유신과 함께 했던 마음이 어느새 1910년 파리 교외 모자를 파는 상점을 처음 연 가브리엘 샤넬에게로 옮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