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신의 음성

인생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두번째로 중요한 것을 내려놓다.

by 블루비얀코

“선생님 오셔서 기다리시는데 애가 안 와요.” 도우미 아주머니의 카톡 메시지가 전화기 창에 떴다. 번호를 누르고 또 눌러도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메시지로 넘어갑니다… 삐” 소리만 들려왔다. 이 녀석이 또.


일을 서둘러 마무리한 후, 집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고도 전화번호를 누르고 또 눌렀다. 그날따라 강변북로 정체는 왜 그리 심하던지.


7시가 넘으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단순히 과외수업이 싫어서 연락을 끊기에는 늦은 시간인데…


남편이 파출소에 신고를 해서 얻은 휴대전화 신호 추적의 결과, 집 근처 한강고수부지에서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혔다고 했다. 차를 몰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한강 가를 헤맸다. 안 좋은 상상은 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집 대문을 여는데, 얼굴이 하얗게 된 둘째가 나를 보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나도 모르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신이시여! 이 아이만 무사히 돌려보내주시면, 제 모든 것을 내려놓아도 좋습니다!”

30분쯤 지났을까. 인터폰이 울리고 경비원 아저씨가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아이 올라갔어요!”


문을 열자 아이가 계단에 앉아 꼬질꼬질한 얼굴을 하고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황에 스스로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과외수업을 하기 싫어 동네를 돌다가 왔다고 했다. 아이는 울먹이며 “엄마, 미안해. 그런데 엄마 없이 더 이상 못할 거 같아. 엄마가 회사 그만두면 안 돼?” 했다.


선택의 기로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나는 고3이었고 이듬해 89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공부 잘해 성공하면 행복하다”는 부모세대가 물려준 삶의 만트라였다.


대학 졸업 후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고 30대 초반, “더 많이” 공부해서 “더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해 운 좋게 합격한 미국 와튼 스쿨의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마쳤다. 유학 후에는, 미디어 업계서 기업전략과 마케팅 관련 일을 했다.


기자였던 남편이 북경특파원으로 근무했던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은 영화 ‘프라다는 악마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인 패션잡지 보그를 발행하는 세계적인 미디어 회사 Conde Nast의 중국지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기도 했다.


서울에 돌아와 국내 최대 패션잡지사의 CEO로 일을 하게 되었다. 일하던 그룹 내에서 능력도 인정받아 임원으로 승진도 했고, 그룹 내 계열사 소속 방송국에서 해외사업을 담당하는 임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미디어 회사의 CEO’라는 어릴 적부터 꿈꿔 온 행복의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얄궂게도 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나를 “아들과 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세워놓으셨다.

이 시기만 잘 버티면 아이들한테도 엄마가 일하는 게 좋을 텐데. 내가 일을 그만두면 해외여행도 못 가고 애들 좋은 교육도 시키기 어려울 것 아닌가? 장애를 겪고 힘들게 버티시는 부모님께도 딸내미가 사회생활 잘하는 게 자랑거리인데 실망하시는 걸 어찌 보나? 여성 임원이 드문 회사서 임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 문제로 링에 수건을 던지는 모습도 보이기 싫었다.


집 가까운 교회 새벽기도 자리에 나가 길을 구하며 두 손을 모았다. 기도가 끝나고 펼쳐진 묵상집 에세이가 눈에 들어왔다.


‘목사님이 신도 집에 심방을 가게 되었는데 그 집엔 어린 딸이 있었다. 그 아이의 방은 전 세계에서 온 신비하고 아름다운 인형들로 가득했다. “너는 인형이 참 많구나. 어떤 인형이 가장 좋아?” 하는 목사님의 물음에 그 소녀는 “웃지 마세요.” 하더니 화려한 인형들이 놓인 진열장을 지나 벽장문을 열고 낡고 찢어진 인형 하나를 꺼냈다.


“왜 이렇게 이쁜 인형들이 많은데 그 낡은 인형이 좋아?” 하는 물음에 아이가 대답했다. “다른 인형들은 이쁘니까 다른 사람들도 사랑해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인형은 낡고 더러워져서 저 아니면 사랑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 순간, 침묵을 지키던 신이 따뜻한 목소리로 “회사, 후배들에 대한 책임감, 부모님의 기대, 그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도 지켜낼 수 있지 않겠니? 하지만 네 아이는 네가 아니면 누가 사랑해줄 수 있겠니?”라고 답하는 듯했다.


2017년 7월. 그렇게 나는 인생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을 위해,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