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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비얀코 Oct 31. 2021

사랑으로 이야기하기,이야기로 사랑하기6-연금술사

자아의 신화와 장미석 브로치

친정어머니의 화장대 서랍 한 귀퉁이서, 50년 전 결혼 때 예물로 받으셨던 장미석 반지를 발견했다. 한동안 끼지 않아 원석이 빛을 잃은 데다, 디자인도 구식이라 끼고 다니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네가 가져가 금이라도 팔아 쓰라고 하셨다. 금만 빼서 쓸까 하다가, 그래도 할머니가 귀한 장남을 결혼시키시며 행복하게 잘 살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하셨을 장미석을 그냥 버릴 수 없어 동네 보석상에 가져가 리세팅을 하기로 했다. 


이왕 새 생명을 불어넣는데,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특별한 디자인을 하고 싶어 보석상 사장님과 상의하며 여러 달 고민하다 장미석 위에 깃털 달린 가면을 만들어 넣기로 했다. 


디자인대로 정교하게 세공된 브로치는 맘에 들었다. 그런데 특별한 디자인만큼 상징하는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을 하기 전 뜻을 생각하고 만들었어야 했는데, 만들고서 뜻을 찾으려고 하다니…. 황금 가면이 멋지게 표현된 영화의 한 장면을 찾으면 좋으련만.


브로치를 손에 쥔 지 삼 개월쯤 지나,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낭독하다 마지막 부분 보물 상자를 열게 되는 장면이었다. ‘… 궤짝 안에는 눈부신 보석들, 붉고 흰 깃털로 장식된 황금마스크, 갖가지 보석으로 세공된 조각상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래 이거야! 자아의 신화를 찾아 나선 여행 끝에 찾게 된 보물상자. 그 안에 들어 있는 마스크! 


죽는 날까지 ‘자아의 신화’를 찾다 죽을 것이고, 모든 이들에게 ‘자아의 신화’를 찾아 길을 떠나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나에게 <연금술사>는 그 내용만으로도 인생 책이 되었고, 고맙게도 내 브로치를 ‘자아의 신화’의 표지로 만들어주었다. 


브로치를 달 때마다 느껴지겠지. 할머니의 사랑과 엄마의 손길과 나의 자아의 신화가. 




브라질의 세계적인 작가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는 반쯤 읽다가 접어 놓은 채로 내 책장 구석에 3년 정도 꽂혀 있었다. 낭독을 위한 책을 찾다 어렵지 않은 모험기의 내용이 좋을 듯하여 오랜만에 다시 집어 들었다. 


외국 배우 러셀 크로우가 쓴 추천사에 ‘첫출발을 하는 신인배우에게, 또 인생에서 다시 방향을 잡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늘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고 되어 있었다. 처음에 이 책을 고른 것도 아마 그 서평을 본 후였던 것 같다. 이른 은퇴 이후 ‘다시 길을 찾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내 간절한 마음에 이 서평은 ‘당신이 원하는 걸 내가 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는 누군가가 피라미드로 자신을 데려가 보물을 찾게 하는 꿈을 여러 번 꾸게 된다. 우연히 만난 한 노인으로부터 모든 인간은 ‘자아의 신화’를 찾아야 할 의무를 지닌다는 말을 들은 산티아고는 양을 팔아 이집트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피라미드로 향하는 모험 길에서 산티아고는 온 재산을 도둑맞기도 하고 전쟁 속에 휘말리기도 한다. 마침내 그는, 험난한 삶 속에서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자만이 얻게 되는 ‘만물의 정기’ 속에 숨겨진 지혜를 얻게 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나타났던 모든 사건과 사람들이 자신이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길로 인도하는 표지임을 깨닫는다. 


사막에서 모은 부와 사랑하는 여인 옆에 안주하려는 산티아고에게 나타난 연금술사는 자아의 신화를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 허망함을 설명해주며 그를 다시 피라미드로 향하도록 인도한다. 마지막까지 몇 번의 고비를 넘긴 산티아고는 피라미드 앞 그를 위해 예정되어 있던 보물상자를 찾아내고, 긴 사막에서 고난을 딛고 만물의 정기와 하나 되는 깨달음을 얻어 금과 같이 강해진 그는 보물과 함께 사랑하는 여인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은퇴 이후 내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건 나를 둘러싼 삶의 세 가지 질문이었다. 신은 왜 선하신 나의 부모님의 노년에 장애와 간병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을 허락하셨는지?


남이 만들어 놓은 틀을 따라가기 싫어하는 개성이 강한 아들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마지막으로, 나는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신이 나를 데려간 곳은 바로 내 삶의 자리와 도서관이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교회 모임에 나가 성경공부를 하고, 학원 끝나기를 기다리며 도서관에서 ‘고난, 교육, 길’이라는 키워드를 찾아 손에 들어온 수백 권의 책들의 책장을 넘기고 또 넘기면서 나는 그 주제들과 실랑이를 해왔다. 


신기하게도 <연금술사> 속 여러 가지 표지들처럼 내 인생 답의 표지들은 책 속에 들어 있었다! 


서점 종교서적 코너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고난에 대한 수 없이 많은 책들은 고난이란 ‘신이 인간을 금으로 빚어가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연금술의 과정’ 임을 알려주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 정신의학자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은 ‘극한의 고난 속에서도 인간은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존엄성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사명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명철한 정신의 끈은 놓지 않기 위한 아버지의 몸부림을 통해, 긴 시간 간병 속에서도 자식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진흙 속 연꽃처럼 강인하게 피어오르신 엄마의 강인함을 보며, 소심하고 유약하던 내 모습 속 어딘가 숨어 있을 용기와 강함을 찾을 수 있었다. 


자녀 교육에 대한 수많은 책들 중, 200년 전 쓰인 교육 고전 <에밀>의 ‘천성을 살리는 교육’에 대해 읽으며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의 자질을 살려주는 교육을 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왔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철학자로 평가되는 크리슈나무르티의 <교육을 말하다>라는 책을 통해 ‘자신을 아는 것이 진정한 자유로 이르는 것이며, 자신을 아는 지혜로부터 세상을 사랑하고 인류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창조적 지성이 키워질 수 있음’을 생각하며 삶 속 과정에서 짜인 틀에 맞추기보다는 아이에게 맞는 교육 방법과 학교를 찾아주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각기 다른 문제로 보이던 세 가지 질문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느낀다. 부모의 삶을 관찰하며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소통하게 되면서 나를 얽매던 열등감에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했다. 아이의 ‘자아의 신화’를 찾아주려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모든 시간들이 궁극으로는 ‘나도 모르던 나’를 발견하는 고리로 연결되어 감을 느낀다. 


책이 자신을 이해하고, 삶을 이해하고, 용기를 주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된다는 믿음 하에, 부모님을 위해 책을 낭독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며 지인들에게도 공유하니 주변에서 유튜브나 오디오 채널을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언젠가는 용기를 내어 보리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서 교사로 봉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자신만의 책을 소개하도록 하면서, 모든 아이들은 각자의 다름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이며, AI시대의 교육은 같은 틀에 모두를 맞추는 것이 아닌 각자의 특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역할이 크게 중요할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어쩌면 내가 있는 자리, 그 자리서 치열하게 사랑하고, 지혜를 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발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내 길이 만들어지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파올로 코엘료는 아래의 이야기로 <연금술사>의 끝을 맺는다. 


성모 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수도원을 찾으셨다. 사제들이 길게 줄을 서서 성모께 경배를 드렸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시를 낭송했고, 어떤 이는 성서를 그림으로 옮겨 보여드렸다. 줄 맨 끝에 있던 사제는 제대로 된 교육도 받은 적이 없는 볼품없는 사람이었다. 곡마단에서 일하던 아버지로부터 공을 가지고 노는 기술을 배운 게 고작이었다. 다른 사제들은 수도원의 인상을 흐려 놓을까 봐 그가 경배드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오렌지 몇 개를 꺼내더니 공중에 던지며 놀기 시작했다. 아기 예수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성모께서는 그 사제에게만 아기 예수를 안아볼 수 있도록 허락했다. 


늦은 저녁 일렉트릭 기타에 빠진 중1 막내를 기타 학원에 데려갔다. “벌써 기타 줄이 녹슨걸 보니 연습을 얼마나 하는지 알 수 있네요.” 하시는 선생님을 따라 기타 줄 사이로 바쁘게 손가락을 놀리며 그 만의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아들을 보며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 “엄마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글 썼다며 피곤하지 않아?” 하는 아들에게 “하나도 안 피곤해. 아들이 ‘자아의 신화’를 찾아 노력하는 걸 보는데 피곤은 무슨. 혹시 아니? 엄마도 열심히 너 키우다 보면 아기 예수를 한 번 안아 볼 수 있을지?”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하는 백미러 속 아들의 얼굴 너머로 붉은 노을이 찬란했다.  


“나는 자아의 신화를 살아가는 사람 곁에 항상 있다네.” <연금술사> 속 늙은 왕이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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