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 천성까지
이년쯤 된 일이다. 아버지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날은 유독 병상의 아버지가 그렇게 안돼 보일 수가 없었다. 자동차 운전석에 앉자마자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흐르는 정도가 아니었다. 엉엉 소리 내어 통곡을 했다. 수지에서 서울까지 오는 한 시간 내내, 그 눈물은 멈춰지지가 않았다. 평생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눈물의 정체가 뭘까?
한 동안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주 찾아뵙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는 기력이 쇠하시기는커녕, 엄마가 챙기는 제철음식덕에 몸도 건강해지시고, 매일 몇 시간씩 신문을 보시며 정신은 더 맑아지셨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갔고, 마치 답은 그게 아니라고 힌트를 주는 듯, 아버지 팔순에 선물해 드렸던 꽃분홍 난 화분에는 철마다 꽃이 피고 또 폈다.
‘통곡의 사건’ 있은 지 일 년쯤 후, 우연히 성경을 듣다 마주한 구절이 귀에 들어와 꽂혔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장 26절).’
어쩌면....
사고 전 어머니와 성당에도 나가시고 세례도 받으셨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식구들의 지극한 간병에 평소에는 평온함을 유지하고 계시지만, 유독 신이나 신앙의 이야기를 할 때면 극도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셨다.
그렇게 오랜 세월 자신을 눕혀 놓고 대답 없는 신에게 아버지는 화가 날 대로 나 있으셨다.
신앙 이야기를 할 때마다 듣기 싫다고 거부하시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런 이야기하려면 가라.”고 하셨다.
사고 후 얼마 동안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치유의 은사가 있다는 목회자나 지인들을 초대해 안수기도도 받으셨다. 성당 신부님께서도 가정방문을 해주시고는 했다. 그런데 매번 실망하고 또 실망할 뿐, 아버지의 바램대로 기적같이 아버지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이 땅위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다시 일어서실 수 있으실지, 아니면 그대로 돌아가시게 될지는 오직 하나님의 뜻. 분명한 건, 신이 없다고 치부하거나, 혹은 신이 자신을 버렸다고 분노하는 한, 병상에 누우신 아버지의 운명과의 투쟁은 분명 더 힘겹고 외로울 것이었다.
아버지를 하나님과, 또 자신의 인생과 화해시켜드리고 싶었다. 그게 아버지 인생 마지막 단 하루가 될 지라도….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한동안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그대로 친정에 가서 아버지께 성경 이야기도 해드리고, 내가 아는 범위에서 고난의 신앙적 의미도 설명해드리려 노력을 했다.
코로나가 터지고 노인들 계시는 집에 자유롭게 드나들기가 조심스럽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자식들에 대한 애살이 큰 엄마가 딸이 매일 긴 시간 운전하고 와서 아버지를 위해 봉사하는 듯한 모습을 부담스러워 하셨다.
성경 앱을 틀어 놓고 들으시도록 하기도 했지만, 평생 교회 근처에도 가 보신 적이 없는 아버지로서 성경을 듣는 것만으로 믿음이 생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올봄, 책의 치유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비블리오테라피'라는 책이 손에 들어왔고, ‘이거라도 해보자’ 싶었다. 그저 아버지가 외롭지 않게, 같이하는 시간의 추억만으로도 아버지와 나 둘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 될 테니....
처음은 아버지가 좋아하실만한 책을 고르려고 했다. 그런데 로빈슨 크루소, 노인과 바다, 키루스 대제 모두 다른 이유로 책을 골랐는데도 그 내용의 가장 중심에 하나님이 떡 하니 자리하고 계셨다. 참 이상하다....
낭독을 통해 아버지가 하나님께 마음을 열 기회를 잡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사심(?)이 생기니 책 고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아버지는 워낙 예리하셔서 상대방의 속내를 금방 간파하신다. 혹시나 아버지가 "그런 거 하려면 관두라." 하심, 지금까지 한 수고조차 허사가 되지나 않을까….
서재에 가득 꽂힌 기독교 서적들을 둘러보고 또 둘러봐도, 들키지 않으면서 아버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책은 없는 듯했다.
그러다가 시선이 책장에 꽂힌 붉은색 책 표지의 ‘천로역정’에 꽂혔다.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리고 읽힌다는 기독교 고전의 대명사. 주인공의 이름은 대놓고 아예 ‘크리스천’이고, 내용은 주인공이 ‘좁은문’을 통과해 우여곡절 끝에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천성’에 이른다는, 믿음의 여정을 우화적으로 그린 이야기. 책의 곳곳에 주인공이 성경구절을 읊조리는 장면이 가득한 이 책을 과연 아버지가 거부감 없이 들으실 수 있을까?
‘다양한 인물이 나오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긴장감 있게 펼쳐지는 책이 좋다’ 던 아버지 말씀이 기억났다.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모르겠다 한번 해보지, 뭐!’
이 책에는 ‘고집’, ‘변덕’, ‘신실’, ‘소망’ 등 이름만으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이 등장한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연기를 했다. ‘신실’의 목소리는 내 안에 존재하는 최대한 신실한 목소리와 말투를 꺼내어, ‘변덕’의 목소리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변덕스러운 인물을 상상하며 긴장감 있게 목소리 연기를 했다.
엄마는 재미있다며, 잠자리 누워 들으면 힐링이 되는 느낌이라 하셨다. 아버지는 ‘도대체 미리 몇 번을 읽어보기에 그렇게 실감 나는 연기가 가능하냐’고 물으셨다. 그렇게 무엇인가에 빨려 들어가듯, 단 하루의 쉼도 없이 낭독을 마쳤다.
꾀가 나는 날도 있었고, 짬을 낼 수 없이 바쁜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집으로 오는 길 있었던 통곡의 기억'이 나를 책상 앞에 데려다 앉혀놓았다.
생각해보면 올해 초, 스마트폰서 장난 삼아 뽑아보았던 ‘올해의 성경구절’도 그거였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3-14절)
딸의 목소리 연기를 신기해하며 들으시던 아버지의 영혼 또한 좁은 문을 통과해 천성에 다다를 수 있기를! 내 몫은 그저 기도하듯 읽어 내려가는 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