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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비얀코 Sep 05. 2021

사랑으로 이야기하기, 이야기로 사랑하기 4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찍지 말라.

꽃향기가 가득한 5월 낭독을 시작한 후, 두 달 동안 <로빈슨 크루소>, <키루스 대제의 역전의 병법>, <노인과 바다>, 세 권의 책을 낭독해낼 수 있었다. <노인과 바다>를 낭독하면서 아버지, 엄마, 고모님 두 분 이렇게 독자가 늘었고, 늘어난 청취자만큼 단어 하나하나를 실감 나게 발음하고 실수를 줄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노인과 바다>는 아버지와 노년의 청취자를 위한 낭독 작품으로 최고였다. 등장인물과 상황은 아버지가 공감하시기 좋았고, 책의 분량과 호흡도 낭독을 하기에 적당했다. 


다음 작품은 무엇을 골라야 하나? 낭독하는 책의 반 이상을 넘어서면 그다음부터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매일 낭독 파일을 들으시고 청취소감을 보내주시던 고모님께서 <노인과 바다>의 낭독이 좋으셨는지 다음 작품은 헤밍웨이의 다른 작품인 <무기여 잘 있거라>를 낭독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을 해 주셨다. 


“고모께서 다음 작품은 <무기여 잘 있거라>를 하자고 하시네요.” 


“Fairwell to arms! 영문과 출신임을 스스로 기억하시려는 듯, 아버지는 한껏 혀를 굴리시며 영문 제목을 알려주신다.


“노인과 바다는 등장인물의 수가 적어서 각각 인물의 성격을 살려 낭독하기가 좋았는데, <무기여 잘 있거라>는 등장인물이 훨씬 많아 낭독이 쉽지 않을 텐데.” 도서관에 들러 책을 찾아보니 아버지의 예측이 적중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소설 전체의 분량도 길고 등장인물도 훨씬 많았다. 낭독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고민하던 때, 마침 고모님께서 다시 톡을 보내셨다. “예전 읽었던 추억이 있어 <무기여 잘 있거라>를 제안했는데 낭독의 취지에 맞지 않는 작품인 듯하네. 제안을 취소함세. 우리는 사춘기 때 전쟁을 겪은 세대여서. 옛날에 중간까지만 읽어서 궁금했네.” 


사춘기 때 전쟁을 겪은 세대! 


언젠가 아버지께서 6.25 전쟁 무렵, 집에 땔감이 없어 큰 아들인 당신이 기찻길 석탄더미에서 석탄을 훔치다 들켜 야단맞고 돌아왔던 이야기를 하셨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마돈나, 컬처클럽, 듀란듀란과 같은 해외 팝스타에 빠져 있던 시기, 내 아이는 컴퓨터 게임 속 지구 반대편 친구와 가상현실의 게임을 즐기고 있는 시기에 아버지는 전쟁을 겪으셨다니! 


가족이란 이름 안에 늘 같이 살아왔기에,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나와 아이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힘든 상황을 예민한 사춘기에 겪으셨다는 생각에 마음속 연민이 생겨난다. 역사의 질곡 속 그 오랜 세월을 무던히도 버텨오셨음에 존경심이 생긴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소설은 매일 어느 정도의 이야기의 진전을 한 번에 담으려면 낭독의 분량을 20분에서 30분까지 길게 가져가야 했다. 날씨가 더워지니 매일 긴 분량의 낭독을 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하고, 듣기에도 쉽지 않았다. 하나하나의 호흡이 짧으면서 여운이 남는 책은 없을까?


책장을 둘러보다, 류시화 시인의 인도 우화집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가 눈에 들어왔다. 일을 그만두고 ‘길’이란 단어를 검색해 걸려드는 책은 모조리 찾아 읽어 치우던 시기, 마치 신이 나를 향해 ‘내가 너를 잠시 쉬게 할 뿐이니 멈추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제목에 이끌려 읽은 책이다. 


백 편의 쉽고, 단순하지만 울림이 큰 우화가 짧은 호흡으로 엮어져 있어, 책상에서 손이 쉽게 닿는 곳에 꽂아 두고 달콤한 막대사탕 빼먹듯, 글 하나씩을 음미하던 책이다. 직접 아버지께 찾아가 책을 읽어드리기 시작할 때, 이 책의 우화 몇 편을 읽어드렸는데, 수수께끼 같이 결말을 추측해볼 수 있어 아버지도 재미있어하시며 이야기의 끝마다 옅은 미소를 보이셨다.


“더운 여름이니 산뜻하고 쉽고 가벼운 글을 읽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여름엔 향수도 산뜻하고 가벼운 것이 좋으니까요.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마라>라는 인도 우화집인데 호흡이 길지 않고 내용도 재미있습니다. 생각하게 하는 여운도 남고요.” 


“그거 좋겠습니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도 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기도를 해달라고 했던 부분이 생각나네요!” 고모님도 동의하셨다. 


백 편의 우화 중, 아버지가 좋아하실 것들을 골라 하루에 두 편씩 낭독해 보내 드렸다. 


‘바가바드기타와 숯 바구니’라는 우화가 있다. 할아버지와 함께 매일 아침 오래된 경전 <바가바드기타>를 읽던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경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바구니 하나를 던져주며 강에 가서 바구니에 물을 떠 오라고 시킨다. 소년이 바구니에 물을 가득 담았지만 집에 도착하기 전 바구니의 물은 틈새로 새어 나가 버린다. 소년은 바구니에 물을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할아버지는 더 빨리 뛰어보라고 다구 친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소년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바구니를 잘 보거라.” 물을 담는 것에만 신경을 쓰던 소년이 바구니를 들여다보니 숯 검댕이로 더럽던 바구니가 빛이 날 정도로 깨끗해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말한다. “경전을 읽을 때 일어나는 일도 이와 같다. 너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경전 내용이 너의 마음 틈새로 다 빠져나가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행위가 너의 안과 밖을 서서히 변화시킬 것이다. 이것이 꾸준한 수행이나 명상이 우리 삶에서 하는 일이다.”


이 책을 낭독하는 시간마다 마치 영혼의 세수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나의 바구니가 매일 조금씩은 정화되고 있었던 걸까....


중3이 되며 사춘기의 힘든 터널을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큰 녀석은, 원하는 고등학교에 지원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입시에서 내신이 중요하니, 새 학기 들어 학교 공부에 열심을 다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첫 시험에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가 보다. 시험 결과가 나온 날 저녁 내내, ‘암기할 게 너무 많다.’ ‘이런 공부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이 시간에 실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게 나은 게 아닌가 모르겠다.’ 푸념을 늘어놓는다.


어떻게 힘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데, 마침 낭독했던 ‘바구니 이야기’가 떠올랐다. 


“엄마가 할아버지 낭독해드린 이야기 중에 이런 게 있는데…” 


 “물론 지금 외우는 그 지식들은 바구니 틈새로 빠진 물처럼 쓸모가 없을 지도,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어. 그런데 어쩌면 하나님 원하시는 건, 앞이 안보이는 것 같아도 성실하게 나가는 그 과정을 통해, 너라는 바구니를 깨끗하고 크게 만드시는 건지도 몰라. 문제 풀 때 잊지 말아야 할 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거잖아. 물론 성적이 중요한데, 엄마 생각엔 네가 실망하지 말고 하던 대로 열심히만 하면, B가 아니라 C를 맞아도 합격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바구니의 이야기의 결말을 듣자, 저녁 내내 한숨을 내쉬던 아이의 얼굴에 환한 빛이 떠오른다. 


매미소리가 한창인 무더운 여름날, 오래된 인도의 우화 한편이 1939년생 아버지에게, 1971년생 나에게, 그리고 2006년생 아들에게, ‘지금 잘하고 있다고, 그렇게 가면 되는 거라고’ 말을 건다. 툭툭 어깨를 다독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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