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드리는 사모곡
집 근처 단골 정육점의 젊은 사장님은 내가 잘 차려입은 모습을 볼 때마다 “친정 다녀오세요?” 물으신다. 친정 갈 때 내 차림새가 다른 날에 비해 멀쩡했던가 보다.
실제로 친정 갈 때는 외양에 신경을 쓴다. 입성이 후줄근한 모습을 보면 엄마는 당장 옷장을 열어 고운 색 옷을 꺼내 입혀 보시고, 낯빛이 피곤해 보이면 홈쇼핑서 산 마스크 팩을 잔뜩 싸 주신다.
아이를 키워보니 그 마음 백분 이해가 간다. 내가 조금 힘들어도 아이가 멀쩡하면 그걸로 힘이 나는데, 내가 아무리 편해도 아이의 낯빛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힘들게 힘들게 칠십 대 중반 노인의 안간힘을 내어, 아버지를 간병하며 매일매일을 살고 있는 엄마한테 더 이상의 마음의 무게는 지게 하고 싶지 않기에, 친정에 갈 때는 피부도 잘 만지고 옷차림도 신경을 쓴다.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의 ‘너를 두고’라는 시가 있다. 엄마를 향한 나의 마음을 대신 표현해준 시인이 고맙다.
너를 두고 - 나태주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가진 생각 가운데서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표정 가운데
가장 좋은 표정을
너에게 보이고 싶다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
나 스스로 네 앞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친정집에 들어서니 부엌에 서 있는 엄마의 심사가 편치 않으시다. 새벽까지 아버지 대변 수발을 드느라 거의 잠을 못 주무셨단다.
“이 노릇이 언제나 끝나니?” 엄마는 한숨을 내 쉬셨다.
“하나님 계획이 있으시겠지….”
“하나님이 있기는 하니? 그럼 나한테 왜 이 고생을 하게 하니!”
퉁그러진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너무 힘들고 지치는 거다.
십삼 년 전 사고가 났을 때, 아버지의 경추 3.4번이 골절이 되었고, 그 이후로 아버지는 목 아래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다. 사고 직후 수술을 받으셨는데, 의사는 휠체어는 혼자 힘으로 탈 수 있을 거라 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일으켜 보리라는 희망에 가진 것 모두를 쏟았다. 수술 후 6개월 간, 재활병원 병원비에 간병인 비용까지 있는 돈 없는 돈 써가며, 매일 반찬 해다 나르며 아버지의 재활에 모든 걸 걸었었다. 재활 병원에서 큰 변화가 없고 장기전이 될 조짐이 보이자 아버지를 집으로 모셨다.
병원 침대, 이동 시 아버지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리프트, 전동휠체어, 장애인용 자전거 등을 사서 놓았고, 간병인을 두고 집에서 재활 병원을 차리다시피 했다. 기력이 있어야 재활도 가능하다고 하루 삼시 세끼 고단백질 영양식으로만 해드리고, 목욕이 도움이 될 까해서 이틀에 한 번씩 통나무같이 무겁고 뻣뻣한 몸을 옮겨 목욕을 시켰다.
아버지도 운동을 조금씩 하셔서 사고 후 몇 년 안에는 워커를 잡고 스무 발자국 정도 걸으실 수 있는 정도까지도 몸이 좋아지시기도 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아버지는 재활 과정에서 단계마다 오게 마련인 고통과의 싸움에서 늘 뒤로 물러나셨다. 하루 이틀 운동하다 근육통이 생기면 이내 항복하고,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마음보다는 타인의 힘으로 나아지겠다는 마음이 크셨다. 아파도 운동을 지속해야 신경도 근육도 발전이 있을 텐데, 아버지는 조금만이라도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모든 걸 중단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결국 어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재활에 실패하셨다. 오히려 누워있는 삶이 익숙해지자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듯 요구만 느셨다.
몸의 능력은 20%도 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건 100%를 요구하시니…. 성격적으로도 아버지는 꼼꼼한데, 엄마는 급하고 선이 굵으니 두 분이 사사건건 부딪치기 일쑤였다.
재활을 포기한 상태에서 아버지 같은 1급 장애인을 돌보는 삶은, 흡사, 제대 기한이 없는 일등병의 군대생활이나 마찬가지다. 지루하고 나아지지 않는 그 삶에 엄마는 지칠 대로 지쳐 계시다. 워낙 강한 사람이라 이 정도를 버텨온 거다.
엄마가 힘들다 하소연이라도 할라치면, 아버지가 “당신보다 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다”는 둥 밉상스러운 말씀을 하시고, 그런 날 아버지의 침상은 전쟁터가 된다. 싸움에 승자는 없다. 상황에 대한 황망한 마음과 서로에 대한 연민이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각자의 마음에 생채기만 남긴다.
“저렇게 살아서 뭐하나? 괜스레 오래 살아 자식 고생시키지 말고 빨리 데려가라고 그래라!”
맘과 다른 이야기를 하신다. 엄마의 진심은, 아버지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알 수 있다. 아버지 호흡이 안 좋아지시거나 힘이 떨어지시면 엄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진짜 아버지 돌아가시길 바라는 사람이면 그럴 리가 없다.
“그동안 간병한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면 어때요? 유병장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간병하는 삶을 살아야 할 텐데, 엄마가 먼저 겪은 이야기가 사람들한테 용기가 되고 도움이 될 거 같아요.”
“나 같은 할머니 이야기를 누가 들어주니? 나한테 뭘 더 시키지 말아라. 하도 시달려서 난 오래 살지도 못할 거다. 니 아버지 묻어주고 빨리 가련다....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이 바뀌어. 빨리 가야지. 무슨 할 일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다가 또 누워있는 사람 마음은 어떨까 안 됐기도 하고."
“그렇게 시를 써보는 거야! 불러 보세요! 제목은….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이 바뀐다.”
내가 종이와 연필을 가져 다가 받아 적을 태세로 운을 떼자, 방금 전까지 화가 나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던 엄마가 피식 웃으며 못 이기는 척 시구를 한 구절씩 불러준다.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이 바뀐다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이 바뀐다
지난밤에도 두시, 네시 두 번이나 일어나 똥 잔치를 벌였다.
술 취한 것처럼 정신이 나질 않고
손가락은 고부라져 펴지지가 않는다.
차라리 그때 가지.
그랬으면 지금 그리워라도 할 텐데….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이러다 벌 받지.
누워있는 그 마음은 오죽하려고….
먹고 싶다던 고추장찌개나 고기 숭덩숭덩 썰어 넣고 해 줘야겠다.
그렇게 엄마의 헌신의 삶 속 한숨은 한 편의 시가 되었고, 시구들은 하나하나 엄마의 영혼을 도닥이며 불 같이 타오르던 화를 누그러뜨렸다.
어쩌면 엄마가 삿대질하던 그 하늘에서 “네 마음 다 안다. 너니까 이만큼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언젠가는 너도 내 마음을 알게 되는 날이 올거다.” 그런 소리가 들렸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