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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비얀코 Mar 31. 2022

사랑으로 이야기하기, 이야기로 사랑하기 11

이병철의 하나님

일 년여 전부터 왼팔이 저리고 같은 쪽 어깨에 통증이 생기는 듯싶더니, 언젠가부터 팔을 들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오십견이었다. 


침도 맞아보고 몸의 균형이 흐트러진 것이 느껴져 운동도 해보았으나, 그때만 반짝하다가 다시곤 그 힘든 통증이 찾아오곤 했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할 정도에, 한번 심한 통증이 오면 주저앉아 통증이 잦아들기를 기다려야 하는 순간들이 계속되자 이러다가 평생 왼쪽을 못쓰는 순간이 오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까지 밀려왔다. 


통증클리닉을 찾았다. 믿음이 가는 의사 선생님께서 이 병은 나빠졌다가 회복되는 사이클을 가지고 있고, 사이클의 어느 부분에 있는가에 따라 치료를 해도 더 악화될 수도 더 좋아질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원래 회복이 되는 거라는 말이지!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 없겠네. 마음이 놓였다. 


몇일 쯤 지나 우연히 양손을 올리는 데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느낌으로 왼팔이 쑥 올라가는 게 아닌가! 이후로는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더니 몇 달이 지난 지금은 거의 이전 상태로 회복이 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앓을 만큼 앓아 나아진 것일 수도 있겠으나 '원래 회복이 되는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내 마음을 두려움과 걱정에서 해방시켜주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대로 마음과 몸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알고, 믿게 되니, 몸도 따라왔다. 




2020년 새해 초반, 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가 세계적인 신학자 R.T. 켄달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80을 넘긴 고령에도 소년의 순수함과 장난기를 가진 백안의 목사에게서는 마치 천상에서 온 전령과도 같은 비범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 그에게 나는 아버지를 위로할 방법을 묻고 싶어졌다. 설교가 끝난 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아버지가 사고로 사지마비를 겪고 오랜 세월 누워계신다. 아버지께 성경을 알려드리고 싶은데 성경 66권 중 어떤 책을 읽어드리는 것이 좋겠는가?" 


노 목사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듯 한참을 눈을 감고 있더니 눈을 뜨며 "로마서!"라고 답을 했다.  


로마서는 당대의 최고 지성이었던 사도바울이 로마의 교인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에 대해 쓴 편지글로, 성경이 반지라면 반지의 보석은 로마서라고 할 정도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고난 속에 들어있는 신의 사랑을 이해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믿음을 붙잡고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초대하는 책이다. 


하지만 처음 성경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로마서는 이해하기 쉬운 책이 아닌데....


아버지에게 그 내용을 설명해드리고 오디오북을 들으시게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시겠다며 그저 딸이 간절한 마음으로 하라고 하니 들으시다 중단하셨다. 


아버지를 위해 책을 읽어드리기 시작한 지 열 달 정도가 되어 간다. 낭독의 유익도 느낄 수 있고, 과정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지만, 이 여정의 1차적 목표를 어디로 잡아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파란 눈의 노 목사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로마서!"를 외쳤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재미있게 로마서를 받아들이실 수 있을 때까지 책을 통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드리면 좋을 것 같다. 


'아버지가 로마서를 들으시고 눈물 흘리시는 그날까지!'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기독교인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노년에 하나님에 대한 24가지 질문을 정리해 가톨릭 신부와 개신교 목사들에게 보내 답을 구하고자 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을 만들어 성공시킨 부자의 대명사, 그래서 '돈병철'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던 그가 인생의 뒤안길에서 끊임없이 답을 얻고자 했던 질문들은 무엇이었을까? 


다음 낭독 책을 찾아 서점을 훑다가 발견한 '이병철의 하나님'이란 책의 제목이 이색적이었다.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재벌, 돈으로 세상 얻지 못할 것이 없었을 것 같은 그가 왜 하나님께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신은 존재하는가?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왜 고난을 허락하는가? 악인이어도 하나님만 믿으면 천국에 가나? 종말은 있는가? 등 이성적인 무신론자로서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을 일목요연하게 친필로 정리한 이병철 회장의 질문서를 통해 답을 구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데 진짜 그런가?'라는 질문은 평생 기업을 일구기 위해 쉼 없이 산 그로서는 억울하게 느껴지는 성경구절에 대한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물음이었다. 이 구절 때문에 재벌들 중에 기독교인이 적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으니. 


저자는 이병철 회장의 생애 고비마다 있었던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의 시간을 같이 그리며, 이 회장이 왜 그런 질문을 신에게 제기할 수 밖엔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그 누구보다 많은 기업을 세우고 일궈, 이 나라 가장 큰 부자가 되었고, 가장 큰 부자였기에 대한민국 근대역사의 고비고비마다 감당하기 쉽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던 이 회장의 삶속 이야기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만만한 인생은 없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많은 부를 가진 자라도 인생의 고난으로부터 면제권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그도 결국에는 신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었으리라.  


신에 대한 질문이라는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 때문에 이 책을 낭독하는 내내 아버지, 엄마가 공감을 하실 수 있으려나 걱정을 했다. 하지만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엄마는 "나는 이번 책이 제일인 것 같더라. 이병철 회장 이야기도 재미있고, 하나님에 대한 내용도 마음에 쏙쏙 들어와 박히던데! 밤에 잠 안 올 때, 그거 듣고 또 듣고 하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더라." 


엄마 또한 30년 시집살이, 13년의 간병의 삶속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지만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져왔겠지. 


그 질문에 대해 신은 인간세상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한 인간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엄마의 삶만 힘든 게 아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더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어려움을 허락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어려운 여정 고비고비에 함께 한다는 사실을 다독이듯 조용히 이야기해주었던 것 같다. 


"아버지! 이 책 들어보시니 이병철 회장이랑 아버지랑 누가 더 행복한 것 같으세요?"


"당연히 나지! 이렇게 책 읽어주는 딸내미도 있고, 든든한 기둥 같은 아들도 둘이나 있고, 토끼같이 이쁜 네 엄마도 있으니!"


"저번엔 못된 마귀할멈이라고 하시더니 이젠 토끼 같아요?" 


"토끼같이 귀엽게 보기로 했어~" 


로마서도, 신에 대한 질문 같은 것도 다 필요 없다. 그저 내 자리와 내 식구들이 고맙고 이쁘게 느껴지면 그것만으로도 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으니까....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이 아버지를 힘나게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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