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암
올해 초, 일기장에 세 가지 기도제목을 적어놓았다.
큰아이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작은아이가 운동을 하게
그리고 제가 '빵과 커피'를 끊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자가 꿈이라는 아이가 학교 전학 후, 학업에 적응하느라 중단했던 그림을 그리는 일과 코로나 시대에 집안에서 스마트 폰과 컴퓨터로만 세상을 만나던 작은 녀석이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은 좀처럼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로 보였다.
그러나 큰 아이는 희망하던 고등학교 합격과 동시에 미술학원으로 향해 그동안 머릿속으로 구상하던 아이디어를 펼치기 시작했고, 작은 아이는 죽고 못 사는 친구와 함께 학교 앞 헬스클럽에 등록을 해 몸짱 만들기에 돌입했다. 기적과도 같은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마지막 기도의 응답은 더욱 요원한 일같이 보였다. 아침 한잔의 커피 향과 갖 구운 빵에서 올라오는 고소한 버터의 향은 내가 죽는 날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만 같았다.
십 년쯤 전, 우연히 만난 건강 관련 책에서 수입된 밀가루 안에 방부제와 살충제가 포함되어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으면 나쁜 성분들이 몸에 쌓이게 된다는 글을 보고, 내 식생활의 문제는 빵이라는 생각이 들어 줄이고자 수없이 많은 노력을 했다. 커피 또한 마시면 가슴이 뛰고 부담이 되어, '하루 한잔만!'을 아무리 외쳐도 결국은 하루에 세네 잔씩을 물 마시듯 마시게 되었다. 커피는 빵을 부르고, 빵은 커피를 부르기에 한 가지만 줄여도 나머지 하나를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아도 그때뿐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이가 드니 몸매는 둘째치고 건강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코 주변도 붉게 변하고, 늘 먹는데 허기는 지고, 밥 한 공기를 제대로 먹는 적도 없는데 살들은 언제나 내 몸에 붙어 '그게 니 운명이란다'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기도를 더 열심히 해야 하나?
어느 주말 우리 삼 남매와 엄마까지 아버지 옆에 붙어 아버지 시중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이내 "복도 많은 영감쟁이! 내가 힘들게 낳고 이렇게 다 키워놨더니 자식들 덕은 자기가 다 보고 있네! 이걸 다 어떻게 갚을 거유?" 하신다.
거기에 아버지는 큰소리로 "죽음으로 갚을게!" 하신다. 겸연쩍고 미안해 농담으로 하신 이야기 시겠지만 왠지 아버지의 범상치 않은 대답이 마음에 와 남았다.
아버지를 위한 13번째 낭독 책은 '사라진 암(한상도 저, 사이먼 북스 출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전립선암을 진단받은 후, 수술이나 항암의 일반적인 치료법을 따르지 않고 암의 원인과 몸에 대해 깊게 공부하고 음식, 생활습관, 마음가짐의 변화로 암을 치유한 놀라운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 서문에 '나는 나를 죽였다. 내 몸속에 암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은 나는, 그때까지의 나를 완전히 버렸다. 그리고 지난 1년 3개월, 나는 다시 태어났다.'는 대목에서 나는 왜 아버지의 죽음으로 갚는다는 말씀이 생각났던 걸까?
노인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건강이라니 건강 관련 책이 도움이 될 듯했다.
저자는 건강에 대해 무지하고, 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던 자신의 생활태도와 습관이 자신의 암을 만든 죄였다고 고백한다.
'모든 것이 내 잘못임을,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인데도, 내 삶의 근원이요 원천인데도 몸에 대해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무지. 그것이 열심히 산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크나큰 죄요, 암은 그 죄에 대한 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먹는 음식이 달라지고, 생활습관이 달라지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육류와 생선, 우유, 계란, 밀가루, 가공식품을 완전히 끊었고, 과일과 채소, 현미잡곡밥에 채소반찬을 먹었다. 아침저녁으로 매일 1만 보이상을 걸었다. 명상과 밝고 긍정적인 생각 유지했다'
마침내 그는 암을 극복하고, 암이 자신의 삶의 축복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암환자가 아니더라도 건강을 위해 누구나 읽기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무엇보다 암 진단의 상황서 두려움을 물리치고 끈질기게 공부하고 공부한 바를 생활습관으로 만들었던 그의 의지가 큰 영감을 준다.
이 책을 낭독하는 3주간 나에게도 반가운 변화가 일어났다. 빵과 커피를 끊게 된 것이다. 처음 한주는 유혹을 물리치는 게 쉽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야채와 과일의 맛과 영양에 몸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니 굳이 빵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 몸무게가 3킬로나 줄고 피부도 좋아졌다.
책은 역시나 치유의 힘을 갖는 걸까?
이 책의 내용을 들으시던 아버지께서도 '반복과 지속'이란 단어가 귀에 들어오셨던지 달력에 '반복과 지속'이라고 적어놓으라고 하셨단다.
성경에서 예수가 사람을 고치는 장면을 읽을 때마다 생기는 질문이 있다. 38년 된 앉은뱅이에게 예수는 묻는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는 질문에 환자는 "나를 이 신비한 연못에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라며 남 탓을 한다. 예수는 '자리를 들고 일어서 걸어가라."라고 명령한다. 그리고는 "더 심한 병이 생기지 않도록 이제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죄를 짓지 말라니? 그렇다면 병자는 다 죄인이란 뜻인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 성경 속 구절이 이 책을 읽고 나니 이해가 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올 초 기도가 세 가지나 응답되었음을 감사하며, 일기장에 조심스레 새로운 기도제목을 올려본다. 죽음으로 보답하겠다고 하시던 아버지가 '두려움과 의존'이라는 마음의 벽을 넘어 '반복과 지속'으로 손가락 하나라도 하루 1mm씩 본인 힘으로 꾸준히 움직이실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의 모두의 마음속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땀 흘리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남겨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