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작은 마음이, 공간을 다르게 기억하게 만든다면
가로수길에 신상 카페가 생겼다니! 매주 가는 신사동에 느낌 있는, 그야말로 ‘느좋’ 카페라니.
-개인적으로 이 단어 쓰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하도 많이 보고 듣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당장 달려가보자!
지난 주말 오전,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한여름 야외 요가를 진행했다. 이름도 무려 ‘이열치열 요가’.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뙤약볕에 요가를 하면 나 또한 땀범벅이 되겠지? 그러면 근처 잠원 수영장에 풍덩! 하고, 개운하게 신상 카페 가서 디저트로 당 충전까지. 꽤나 호기로웠다.
하지만 그날은 유난히 날이 흐리고, 바람이 꽤 불었다. 전날까지 분명 33도를 웃돌던 날씨는 온데간데없었다.
수업을 마치니 애매하게 땀이 났다. 하지만 수경에 수건까지 바리바리 챙겨 온 나로서는 수영장에 물이라도 구경해야겠단 마음으로, 잠원 수영장까지 약 15분간 걸어갔다. 샌들을 신어서 그런지 발바닥이 유난히 아파서, 체감상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겨우 도착해서 “여기구나!” 했는데, 들어가는 입구는 반대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1차 고민을 한다. 가야 할까? 마음속에서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가봐’라는 속삭임이 들렸고, 결국 정말 조금만 더 걸어봤다. 밖에서 보는 수영장은 기대 이상으로 규모가 컸다. 도착했을 때가 11시 30분쯤이었는데, 큰 규모에 걸맞게 삼삼오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썬베드도 꽤나 많이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돗자리나 캠핑 의자에 앉거나 누워 있었다.
2차 고민을 한다. 저 인파를 뚫고 가야 할까? 결국 마음의 소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구경했음에 만족하자는 합리화를 뒤로하며 카페로 향했다. 카페 안에 들어가자마자 “와— 너무 시원하다!” 귀찮게 수영은 무슨, 이게 힐링이지 싶은 나의 옹졸한 마음. 내가 좋아하는 커다란 색깔 쇼파가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았다. 차분한 우드 톤과 채도 낮은 그린과 옐로우 톤의 쇼파는 미니 가구 쇼룸을 연상시킨다. 이미 주문하고 싶은 메뉴를 정해놓고 왔기 때문에 빠르게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사람이 많지 않았고, 데이트하는 커플이 2팀 정도 있었다. 높은 천장고와 원목 인테리어, 특이하게 꾸며놓은 데스크테리어까지, 하나하나 시선을 옮겨 가느라 바빴다. 주문한 메뉴를 받아 사진 촬영도 했지만, 배가 고팠던 나는 먹느라 바빴다. 역시나 오늘도 우아하게 디저트 먹기는 실패다.
내가 주문한 메뉴는 자몽 에이드와— 요즘 자몽 에이드에 빠졌다— 바나나 토스트였다. 언뜻 보기에 특별할 것 없는 디저트 메뉴이긴 하나, 토치된 달달한 바나나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빵의 조합은 혼자 주말 낮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은, 적당히 당 충전하기 딱 좋은 그런 메뉴였다.
공간 자체가 시끄러운 편이 아니라 혼자 와서 작업하기에도 나쁘지 않고, 커플들의 데이트, 소규모로 가벼운 모임 하기에도 적합한 차분한 무드다.
도착했을 때 너무 더웠던 나머지 에어컨 바로 아래에 자리했는데, 토스트를 두 입 먹다 보니 금세 추워졌다.
바로 옆 서랍장 형태로 된 테이블로 이동했다. 이곳의 인테리어에는 하나하나 어떤 정성들이 쏟아졌을지 구경했다. 귀여운 오브제, 직접 제작한 포스터, 옆쪽에 옷이나 가방을 걸어두기에 적합해 보이는 의자 옷걸이까지.
모던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감성 가득한 공간이다.
요즘 나는 이런 개인적인 취향, 디테일한 취향들이 묻어난 공간들이 좋아진다. 대중적이거나 넓은 공간들도 그만의 웅장함들이 분명 있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공간에서는 한 사람의 취향과 감성이 시각적으로 보여진다.
때로는 나의 감성과 다르기도 하지만 뭐랄까, 누군가가 오래 동안 꿈꾸던 공간, 그 사람의 작은 세상에 몰래 들어와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간접적으로나마 나와 다른 사람의 취향을 통해 경험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땀은 식어가고, 바나나 토스트는 전부 해치웠다.
문득 창밖을 보니 우산을 쓰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비가 더 많이 내리기 전에 얼른 일어났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열심히 테라스 자리의 의자를 재빠르게 안쪽으로 옮기고 계셨다. 처음 카페에 들어왔을 때에도 1층에 앉아 가게를 둘러보며, 고객들이 도움이 필요하면 자동문을 열어주기도 하고 엘리베이터를 잡아주기도 하셨다.
단편적인 모습이지만 공간과 나의 일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고 느껴졌다. 어떤 새로운 공간에 가면 아주 약간의 낯선 긴장감이 늘 존재하는데, 이런 소소하지만 인간적인 모습들은 그 공간에 대한 인식과 기억을 완전히 바꿔버리기도 한다.
더불어 결이 다른 이야기이지만, 오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평소 모르는 전화번호는 잘 받지 않아 두 번이나 거절했는데, 이번에는 010으로 동일한 뒷자리로 와서 전화를 받았다. 알고 보니 배달의 민족.
아침에 코코넛 밀크가 마시고 싶어 장보기를 통해 주문했는데, 수량 이슈로 나에게 열심히 전화를 거신 거다.
이런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에는 해결해야 할 이슈가 전제되기 때문에 약간의 어색함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내가 주문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맛’이 어떤 것들이 남았는지 읊어주셨다.
고객 응대 관점에서 귀찮거나 불친절한 경우도 정말 태반이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들도 동시에 불편함을 디폴트로 장착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한쪽이 이 팽팽한 긴장선을 잘라주면, 반대쪽도 사르르 녹게 된다.
그렇게 웃으며 통화를 마쳤다.
돌아다니며 수많은 카페나 숙소 사장님들을 만난다. 그중에서도 결국 시간이 지나 오래도록 기억되는 경우는 공간의 주인이다. 공간에 대한 기억도 존재하지만, ‘그때 그 사장님 그랬지~’ 하며 또 하나의 추억을 곱씹게 된다.
이는 비단 ‘사장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낯선 이들을 만날 때, 오랜만에 보는 사람을 만날 때,
퇴근 후 돌아와 나의 가족을 만날 때— 인지하지 못하지만 관계 속 긴장감이 존재할 때. 어색하지만 웃으며 상냥한 말 한마디 건네보자. 분명 긴장감이 풀어지며 유쾌한 대화가 흘러갈 것이다. 오늘 저녁 마음 가득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 고객이건 지인이건 - 너스레 한 귀여운 웃음과 함께 말 한마디 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