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

by 무비 에세이스트 J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세월이 멈춘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벌려면 장소를 옮기는 것이 가장 좋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작업실을 옮겼다. 2021년 11월에 입주했던 작업실을 2025년 12월에 떠나왔다.


애당초 작업실 용도로 빌린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곳에 머물며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보니 첫 책을 내게 되었고 번역가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숨어있고 싶어 빌린 공간에서 실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 공간은 아지트에서 작업실로 탈바꿈하였다.


특별한 일 없이 살던 내가 삶이 통째로 뒤바뀌어 혼자 숨어 들어가 있던 그 공간. 건물주의 이사 통보를 담은 갑작스러운 전화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연말도 새해도 느끼지 못하고 그렇게 정지해 있었을 것이다. 지난 2년여의 시간들이 영원처럼 나를 뒤덮어 아마도 나를 질식시켜 버렸을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건물주는 생명의 은인이다.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던 시기에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지만.


거의 지난 두 달 동안 글과 담을 쌓고 살며 마음과 머리에서 아우성치는 글의 외침을 억지로 막고 있었다. 써야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 줄 알았지만 온갖 핑계로, 아니 일관된 무심함으로 나는 나의 본성을 무마해 왔다.

그랬다. 작업실을 옮기기 전까지의 나는.


생전 처음 이사란 것을 혼자힘으로 해내고 이제 어지간히 정리가 끝나 새로운 동네를 익혀나가며, 지난 4-5년 동안 나를 감싸고 있던 기운들, 나를 마비시켰던 그 지독한 익숙함이 나를 중독시켜 이미 변할 준비가 끝나있던 내 마음을 보지 못하게 했음을 알게 된다. 단 한 번의 '툭'하는 건드림 덕분에 행동이 생겨나고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이제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리웠던 책상에 앉는 일이 왜 이다지도 힘들었을까. 나도 나의 책상도 공연히 외로운 시간을 보냈구나.


멈췄던 세월의 바퀴가 다시 구르기 시작한다. 시간이 다시 내 품속으로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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