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the shape of words

by 무비 에세이스트 J

성대폴립 제거나 결절 혹은 기타 성대 관련 수술을 해 보신 분들은 아실 수도 있겠지만, 성대 쪽 수술은 수면 마취를 통해 진행한다. 이유는 워낙 예민한 부분이라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환자가 수술 중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수술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해보는 마취 수술은 수술 며칠 전부터 나를 많이 긴장시켰다. 마이걸(1991)의 베이다가 시체를 보고 사는 환경 때문에 늘 자신도 어딘가가 아프다는 생각으로 병원문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것처럼, 나 또한 건강문제에 대해서는 극도의 염려증을 가지고 있어, 건강검진을 열심히 받아오고 있었다. 소화불량인 줄 알고 소화제만 몇 달 먹다 차도가 없어 병원에 갔더니 위암 말기였다는 둥, 너무 피로가 안 풀려서 간장약도 사 먹고 한의원도 다녀봤으나 소용없던 누군가는 간암 말기였다는 류의 이야기들은, 늘 극도의 공포감을 불러일으켰고, 그런 이야기들을 들은 날에는 나 역시 소화가 안 되는 것 같고, 몹시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악몽을 꿀 정도의 새가슴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수면마취라니... 20살 때 쓰다만 유서를 다시 이어서 써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셰익스피어도 고쳤다던 유서인데, 나도 고칠 수 있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채 살다 보니 그 날이 코앞이었다.


그리고 수술을 받았다. 아니, 받은 것 같다.


수술실 들어가서 마스크를 쓰고, 무슨 말인가를 따라 하라고 박사님이 그러셨는데,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고 나의 목안에는 모래가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정말 기적처럼 아무 기억이 없다. 수많은 영화에서 봤던 기절 장면이 마냥 과장만은 아니었구나 싶다. 무언가 내 목안에서 벌어졌을 거라고 느낀 건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서 입을 벌리고 모래바람을 맞은 사람처럼 목안 가득 까끌한 무언가가 나에게 끊임없이 기침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건조한 불편함을 상쇄시키고 억 누르기 위해 끊임없이 물을 마셔야 했지만, 컵째 꿀꺽이 아닌, 한 숟가락 똑똑 스타일로 간신히 성대를 적시는 수준의 수분 공급이 최선이었고, 그 마저도 몹시 고통스러웠다. 수술한 날, 수술했다는 기록 이외에 어떤 기억도 없이 나의 폴립은 제거당했고, 폴립과 함께 목소리와 말을, 즉 '나의 정수"를 빼앗겼다.


일주일간은 정말이지 죽만 먹고 잠만 자고, 물만 먹으며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아야만 했다. 필요한 말은 문장을 소리로 바꿔주는 앱을 사용했고, 필담을 나누기도 했다. 발화된 말의 양에서 압도적으로 열등한, 아니 거의 발화가 불가능한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했고, 의사를 전달할라 치면 앱을 사용하거나 글을 써야 했기에 그마저도 번거로워 말을 하지 않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동안 내가 살면서 당연히 사용해왔던 "말"들과 "말"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왔나, 그리고 말을 할 수 없음으로 인해 달라진 점등을 생각해 볼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다음은 생각나는 순서대로 적어본 것이다.


불필요한 말이 많았다

상대의 말을 들을 때조차 내가 할 말을 생각하기 바빴다

남과 말을 할 수 없으니 나 자신과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말을 하지 못하는 공백을 주변 사람들이 채워주면서, 그들의 생각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나는 말에 주로 의지하며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be told = hear/listen 듣게 된다

말을 못 하니 내 생각을 쓰게 된다

말을 못 하니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게 된다

소통의 다른 창구를 찾게 된다 (안 하던 인스타를 시작하고, 갖가지 앱을 사용해 본다)

다른 사람들의 말들을 유심히 들으며, 남들도 나만큼이나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진실된 말, 정제된 말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으니,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때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이해 가능한 자유를 얻었다


말이라는 소중한 도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거의 두 달이 된 지금 돌아보니, 그동안 그렇게 많은 말을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내가 해왔던 말들의 절반 만으로도 어쩌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 많은 말들을 남들에게 쏟아붓는 만큼 내가 듣지 못한 말들은 얼마나 많을 것이며, 일방적인 말들 또한 얼마나 많았을까. 말이 가진 무게를 새삼스레 깨닫고 나니, 나 자신이 조금은 초라해지는 기분이다.


나처럼, 아파서 목소리를 빼앗기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더러는 말을 좀 줄여보는 것이 나의 말의 가치를 높이고, 내 앞의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더 자주,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싶다. 21세기의 인어공주에게 목소리 사용 여부의 이유가 왕자일 필요는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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