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실. 설사 나랑 친하든 그렇지 않든 그냥 당연히 아는 사실. 내 몸의 70%는 커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미드 '길모어 걸'의 로렐라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난 커피와 떨어져 살아본 기억도, 그렇게 살아본 경험도, 심지어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수술 전까지는.
아...!
수술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커피는 한 달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고, 특히 진한 커피는 피해야 하고, 그 이후에도 재발을 막으려면 커피와 같은 카페인 함유 음료는 가급적 마시지 않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수술보다 더욱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커피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일주일 정도는 수술 후유증이 워낙 심해서 하루 세 번 죽과 독한 약을 세트로 먹고, 꼬박꼬박 아침저녁으로 식염수 소독을 하고, 세 번이나 병원에 가서 경과 확인을 해야 했기에, 커피를 포함 한 그 밖의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딱 일주일이 지나 몸이 좀 수습이 되고 수술한 상태에 적응하고 보니, 나는 내 방 침대에서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나는 중이었고, 이런 계절에 출근하지 않고 오전에 산책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마음속 가득 행복이 고소하게 퍼졌다. 마치 갓 볶은 커피 향처럼.
교사가 되고 휴직을 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10월의 한가운데를 유유히 걸어 다니며, 온몸과 마음을 파란 하늘에 적신 채 아름다운 가을과 하나가 될 수 있단 사실 자체가 꿈만 같았다. 아직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여전히 죽만 먹고 있어 힘은 없었지만, 이런 기적 같은 현실을 기뻐할 만한 체력은 남아있었으니까.
문제는, 창을 부술 것 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을의 기세에 못 이겨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한 블록에 도대체 커피점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았던가. 코너마다 열려있는 스타벅스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커피점까지, 정말이지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상점들은 커피점뿐이었고, 가을 하늘을 가득 채운 향도 오로지 커피 향뿐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봤던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잠시 금연 중에 자기 곁을 지나가던 사람이 담배를 피면서 지나가자 그 담배연기를 손으로 빨아들이던 장면이 연상이 될 정도로 나 역시 정신없이 커피 향기에 취해 카페 안을 기웃거리며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거리에는 커피잔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로 온통 채워져 있는 것 같았고, 그들의 정상적인 그 일상이 너무도 부러웠다.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다가도, 생각보다 소심한 탓에 네이버 지식인을 열심히 찾아보며 혹시라도 커피 부작용이 있을까 찾아봤지만 소득 없는 내용만 가득했다. 병원에서 받아 온 주의사항을 여러 차례 읽어보아도 한 달 동안 커피를 먹지 말라는 내용은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적혀있었다.
남보다 일찍 출근해서 커피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내려먹던 그 아침들, 한 겨울에도 아이스 라떼에 샷 추가를 해서 벤티 사이즈로 한두 잔씩 마셔대던 나의 호방했던 자유의 날들. 심지어 졸업한 아이들마저 나를 찾아올 때는 항상 샷 추가한 아이스라떼를 사 올 만큼 차갑고 진한 커피를 사랑했던 나의 모든 시간들.
아...!
일찍이 19세기에 영국의 시인 콜리지는 '노수부의 노래'에서 도처에 물이 있어도 자신이 마실 물 한 방울이 없음을 한탄하는 노수부를 노래했는데, 내가 그 노수부와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한탄을 한참이나 했던 몇주를 보내야만 했다.
p.s)
지금은 커피를 마신다. 가급적 디카페인으로 마시려고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따뜻한 라테한잔을 마시고 있다. 그러나 이 한잔의 대가는 무시무시하다. 엄청난 양의 미지근한 물로 여전히 아픈 나의 성대와 성대 걱정에 함께 건조해진 것만 같은 나의 영혼을 계속 적셔줘야 하기 때문이다.
“Water, water, everywhere, 천지에 물이구나
And all the boards did shrink; 그런데도 모든 뱃전은 말라서 쪼그라들고
Water, water, everywhere, 여기저기 온통 물인데도
Nor any drop to drink.”마실 물 한 방울이 없구나
― Samuel Taylor Coleridge, 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 , 노수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