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의 바다

by 무비 에세이스트 J

1997년에 나온 독일 영화 '노킹온 헤븐스 도어( Knocking on Heaven's Door)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올해 초에야 보게 됐다. 남들이 좋다고 하고 유명하다고 하면 왠지 피하게 되고 미루게 되는 나의 습성 때문에 이 멋진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된 것이었다. 이마저도 내가 진행하는 영화 팟캐스트가 아니었더라면 한참 뒤에나 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명의 시한부 청년들이 죽음을 앞두고 그렇게나 가고 싶어 했던 바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마침내 그곳에 도착하고, 휘몰아치는 파도 가득한 바다를 보며, 그들은 차례로 천국의 문을 노크한다.

그들이 왜 그렇게 바다에 가기를 원했는지는 영화에서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 바다라니. 그들보다 길게 살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수도 없고 납득도 안 되는 그들만의 바다.


그들에게 바다는 어쩌면 너무 쉽게 가질 수 있기에, 미루다 미루다 놓쳐버린 기회 중 하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성대 수술을 하고 약 두 달 정도 주어진 시간을 그 누구보다 값지게 사용하고 싶었다. 좀 심하다 할 정도로 야심 차게 휴직에 돌입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마치 '휴직 사용법' 매뉴얼이라도 만들어 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교사가 아무 이유 없이 가을이라는 계절을 학교 밖에서 만끽할 수 있겠는가. 질병휴직이 아니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이렇게라도 주어졌으니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온갖 할 일들이 내 머릿속과 다이어리에 가득했다. 약기운 때문인지 늘 멍한 상태였지만 잠도 줄여가며 마음껏 책도 보고, 이것 저것 글도 써보고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미드들도 보며, 그래도 무언가 더해야 할 것 같은 아쉬움을 지닌 채 잠을 청하던 한 달 반이었다.


다음 주면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여전히 회복은 더디고, 오늘 병원에 다녀왔는데 성대 각화 현상이 있어, 또다시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사실 지난 이주 전부터 목이 좀 아프고 감기 기운이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지나치게 에너지를 사용해서인지, 모든 게 다 싫어지면서 침대에서 나오기가 싫어졌었다. 아침이 와서 눈을 뜨고 일어나야 하는 당연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졌다.


그리고 생각들. '또, 이것 저것 채우기만 하는구나. 주위를 둘러봐라. 넌 항상 너무 많은 것들에 둘러 싸여 살아왔지. 네가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며 살아왔던 것처럼. 항상 새로운 일만 벌이길 좋아하지. 왜 해왔던 일에 대해서는 정리를 하지 않지? 샀던 책을 기억 못 해서 두 번씩 사는 널 좀 봐라. 가끔은 지나온 길 좀 돌아보면 안 되니? 네가 지금 무언가에 실패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겠니? 비우고, 치우고, 정리하고, 그리고 채워야 하는데, 넌 왜 항상 채우기만 하니? '


사실이다. 난 너무 채우기만 해온 사람이다. 채우기만 할 뿐인 경우도 많아서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 그래서 상대적으로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 파악을 못하며 살아왔다. 마치 두 번씩 사버린 책들이 여러 권 꽂혀있는 내 책장처럼. 이렇게 채워오며, 적절한 시기에 멈춰 돌아보지 못함으로써 내가 놓쳐버린 것들은 얼마나 많을까. 뻔히 내 눈앞에 있는데도 채워야 한다는 들뜬 열기에 휩싸인 채 지나쳐 버린 것들은 또 얼마나 될까.


내가 지나쳐 버린 나의 바다와 나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침대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마치면 난 침대에 파고들어 잠을 청할 것이다. 운이 따른다면 '바다'가 나오는 꿈을 꾸고 싶다. 그 꿈이 내일 아침 침대를 빠져나가는 일을 좀 수월하게 해줄 수 없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