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바닷가에서

by 무비 에세이스트 J

세상 일이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수술하고 병가 내고, 또다시 병휴직으로 이어지던 나의 환자 생활이 이제 5일밖에 남지 않았다. 수술하고 좀 조심하면 나아질 줄 알았던 이 놈의 상처는, 성대 각화로 이어지며 나를 계속 괴롭히는 중이고, 전 세계 1등 방역을 굳건히 지키고 있음에도 확진자는 줄기차게 오르고 있고, 이런 와중에 재직 중인 학교에서도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여 기말 시험의 일정이 바뀌는 소동이 일어났다. 복직 당일이 마침 시험기간에 해당되는 바람에 여간 부담이 아니었는데, 일단 그 부담은 덜게 되었지만.


성인이 되어서 처음으로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았던 시간이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교사와 개인 사이의 경계에서, 그 어느 쪽도 아닌 그냥 그 경계에서, 이 쪽 저쪽을 둘러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끝이 가까워진 지금, 그동안의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다만, 경계에 선다는 것이 생각만큼 자유롭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차원과 차원이 맞부딪히는 벽면들 틈에서 난 단지 관찰자이고 싶었으나, 지나치게 끼어들고 어김없이 관여했던 것이다. 말을 할 수 없다는 특별한 상황은 나를 조금도 바꿔 놓지 않은 것 같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쓴 엘리자베스 길버트처럼 적어도 1년 정도 아예 익숙한 삶의 장을 떠나, 새로운 언어로 현재를 정의하고, 낡은 패턴을 과감하게 붕괴시켜야만 집착하고 욕심부려 힘들어진 내 삶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나 자신에게 대부분은 지나치게 관대하고 가끔씩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이 양극단의 화합도 이루지 못한 마당에, 경계인의 자유를 누리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또 하나의 헛된 야망이었을까.


마음 위로 빗방울이 후드득.


문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두 명의 모모가 있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와 에밀 아자르의 모모가 그들이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다가왔다면, 에밀 아자르의 모모는 성인이 되어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틀 전 에밀 아자르의 모모를 영화로 재회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영화 역시 '자기 앞의 생'을 제목으로 하고 있고, 제목 그대로 인간은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 낼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캐릭터도 우리가 부러워할 만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영화에서는 사랑을 강조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사는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다. 몸부림을 쳐야 겨우 붙잡을 수 있는 한 줌의 사랑과 그 사랑 덕택에 갖게 되는 생의 울타리. 어쩌면 우리의 삶은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 아닐까.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쉬어도 가면서 그렇게 주어진 삶을 연장해 가는 것, 그것이 삶일른지 모른다.



I never meant to cause you any sorrow 나는 결코 너를 슬프게 하려고 했던 게 아니야
I never meant to cause you any pain 나는 결코 너를 고통스럽게 하려고 했던 게 아니야
I only wanted one time to see you laughing 나는 단지 네가 웃는걸 한번 보고 싶었던 거야
I only wanted to see you laughing in the purple rain 나는 네가 퍼플레인을 맞으면서도 웃고 있는 걸 보고 싶었어


프린스라는 전설적인 가수의 전설적인 노래 Purple Rain(1984)의 가사이다. 프린스 본인이 말하기로 Purple Rain은 세상의 종말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노래의 가사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가사의 I(나)가 Life(삶)으로 느껴졌다. 아까 내 마음 위로 내리던 그 비는 어쩌면 Purple Rain이었을까.


나는 나의 삶에게 미소조차 인색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바다를 나와 육지로 올라왔던 인어공주는 이제 다시 바다가 보이는 바닷가에 섰습니다. 아직은 바다도 아니고 육지도 아닌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곧 돌아갈 바다가 나의 바다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학교 밖 인어공주의 여정은 여기까지 입니다-